작고 아름다운 것들이 이수유에게 곁을 내줄 때, 그곳에는 소박한 삶의 보편과 진리가 있다. 일상에서 장윤미의 감수성이 사적인 경험을 통과해 사회 현상과 연결되곤 한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의 영화를 좋아한다. 극강의 효율을 추구하는 산업의 이름 아래, 생명은 생산품으로 관리된다. 크고 맑아 슬픈 눈, 끝내 절명해 쓰러진 몸, 우리가 고기라고 부르는 것. 축산업의 잔인성을 비난하고 동물의 고통에 연민하기는 쉽다. 그러나 고통을 가시화하는 것과 이를 제대로 바라보는 건 엄연히 다르다. 카메라는 끊임없이 동물들과의 거리를 의식한다. 도살장으로 들어가지 않고, 목숨을 건 실랑이도 많은 순간 생략된다. 고통을 보여주지 않아도 그걸 외면하지 않는 태도가 그 거리에 있다. 동물을 구조하고 돌보는 일은 산업에 맞서 생명을 개별적인 존재로 되돌려 놓는 실천이다. 그러나 돌봄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 간극을 메우거나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 영화는 우리와 동물의 모순된 관계를 바라보게 한다. 동물을 가여워하는 마음과 동물을 소비하는 일상이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의 집단이나 산업의 단위로 뭉뚱그려지지 않는 하나하나의 소와 닭과 돼지. 그들의 삶과 죽음은 결국 우리 세계를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아가는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타자의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그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김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