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통합 검색
로컬 픽, 시간과 빛 Local Pick, Bright Time
참여 | 참석 이시오(<홈커밍> 연출) 문경의(<선을 갈다> 연출) 신은주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조희영(<로봇청소기와 강아지>)
진행 | 이강욱(영화감독)
일상에서 미처 이름 붙이지 못한 채 흘려보내는 감정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형상화하는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홈커밍〉은 이국의 여름, 낯선 도시를 배경으로 했습니다. 제목은 돌아오는 행위를 가리키지만,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 되어 돌아오는가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선을 갈다〉는 두 연기자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드라마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꿈꾸는 시간을 지나 이제는 무언가가 되어야 할 때, 우리는 여전히 꿈과 함께일 수 있을까요. 낯설지 않은 질문에, 당신이 가진 답이 궁금해집니다. 내면의 여정을 그리는 이미지들이 인상적인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은, 자아의 위기 내지는 존재의 의미를 짚어 보려는 작품이라고 말해보겠습니다. 〈로봇청소기와 강아지〉는 AI의 시대에 픽셀 하나하나를 손으로 쌓아 만든 애니메이션입니다. 속도와 효율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은 그 자체로 하나의 발언입니다. 쉽게 규정하기 어려운 감정들, 그러나 분명히 알고 있는 것들. 5월의 "로컬 픽, 시간과 빛"을 통해, 그것들에 이름을 건네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부산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김지연)
홈커밍 Homecoming
시놉시스 유학 시절을 함께 보냈던 서훈과 함께, 오랜만에 필리핀 퀘존시티를 다시 찾은 유안은 추억이 깃든 장소를 거닐며 외면했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연출의도 말하지 못한 사랑, 잊지 못하는 감정,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별을 허락하는 이야기.
프로그램노트 귓전을 때리는 도로의 소음, 아슬아슬하게 질주하는 차들이 만들어 내는 이국의 풍경은 그 나름의 질서를 갖춘 온전한 세계처럼 보인다. 그 사이로 인파에 섞여 배회하는 두 사람이 있다. 맨몸으로 길을 나선 이들은 익숙한 듯 발길 닿는 대로 유유자적 걷고 있다. 그럼에도 어딘가 두 사람은 그곳에 제대로 섞여 들어가지 못한 채 분리되어 보인다. 몇 년 전 함께 퀘존시티에서 어학연수를 하며 가까워졌던 유안과 서훈은 오랜만에 이곳을 다시 찾았다. 서훈의 결혼식을 앞두고 결심한 나름의 우정 여행으로. 한때 이 도시에 머물며 살아가던 그들이었지만 지금은 완전한 이방인도 여행객도 아닌 중간의 어딘가에 있다. 과거의 기억과 관계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장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 시절 그때 우리가 그러했던 일들에 대한 회상과 재연으로 귀결된다. 과거의 시간은 현재와 분절된 채 그 시점에 머물러있기에 아름다운 호시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유안은 그 시간을 오늘로 가져와 잇고 싶다. 영원히 기억의 자물쇠를 잠그기 전에 마지막으로 생생한 현실로 감각하고 싶다. 그러한 유안의 내밀한 욕망은 거침없이 쏟아져 내리는 물살을 마주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형태를 드러낸다. 그 후 이어지는 유안의 발걸음은 더 이상 정처 없지 않다. (이남영)
선을 갈다 Replace the Strings
시놉시스 서울로 이사를 준비하던 날, 현수는 옛 연인 시현에게 "만년필을 돌려달라"는 문자를 받는다. 같은 날, 기타 줄이 끊어지고, 시현에게서 받지 못했던 것을 떠올린다.
연출의도 우리는 모두 만나고 헤어지지만 이는 단지 끝이 아니라 무언가를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그램노트 현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무언가 사라진 자리는 또 다른 무엇으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엄마의 빈자리를 모자람 없이 채워준 할머니 덕에 할 수 있었던 생각이다. 그러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현수는 전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말하자면, 대체가 아닌 잔여에 관하여. 할아버지가 떠난 자리에 남은 건 무엇이었을까. 할아버지의 기타가 무언의 답처럼 현수의 눈에 들어오고, 그때부터 현수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어느 날 조율이 풀린 할아버지의 기타를 들고 집을 나선 그는 연인이 될 시현을 만나는데, 다만 이것은 모두 지나간 이야기다. 현수와 시현의 관계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 이미 끝난 상태로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새 삶을 준비하기 위해 짐을 정리하던 그들은 한동안 의식하지 않았던 이별의 잔여를, 서로가 서로를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을 돌려주고 또 돌려받기 위해 재회한다. 그 시간 동안 두 인물은 제게 필요한 것을 다시금 상대에게서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언젠가 한 몸 같던 서로를 이미 떼어낸 그들의 재결합은 이뤄지지 않는다. 줄이 끊어져도 기타는 기타고 잉크가 떨어져도 만년필은 만년필이듯, 그들은 오직 자신다운 모습을 되새기며 각자의 길을 떠날 뿐이다. 필요한 것을 오직 필요한 만큼만 담담히 주고받고 돌아서는 뒷모습이 마음을 깊이 울렸다. <선을 갈다>가 내게 남긴 것이다. (함윤정)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Closer than they appear
시놉시스 민지는 보기 싫은 자신을 떼어내 묻었다. 다시 가 보니 그 자리엔 무가 묻혀 있다.
연출의도 닿을 수 없는 무언가를 붙잡으려 하지만 계속해서 헛돌고 마는 사람의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프로그램노트 사이드미러에 주로 씌어있는 안내문구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은 영화 속 나와 무의 관계,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자면 존재를 드러내는 조건으로서의 부재, 혹은 존재와 부재의 긴장 관계쯤 될 것이다. 어느 날 나는 ‘나’를 숲에다 묻어버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다시 숲을 찾았을 때, 묻어버린 ‘나’의 자리에는 무가 남아있고, 그것을 옮겨 심었다가 국을 끓인다. 내레이션은 그것을 나라고도, 너라고도 칭하지만, 결국에 나는 나, 또는 무를 먹을 수가 없었다. 여기에서 지시하는 무란 채소로 형상화 되어 있으나 누구든 무(無)의 동음이의어로 작동한다는 것, 그것이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일을 표상한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승옥의 단편 「서울의 달빛 0장」이 나지막한 내레이션의 일부로 활용되면서 영화는 인간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문제, 혹은 정체성을 성찰하는 짤막한 에세이 필름으로 감각적인 탐구를 시도해보려고도 한다. (김지연)
로봇청소기와 강아지
Beep and Woof
시놉시스 아파트 안에서 일상처럼 움직이던 로봇 청소기, 우연히 열린 현관문을 따라 세상 밖으로 나간다. 무심코 흘려보내던 도시 풍경 속, 유일하게 청소기를 바라본 길 위의 강아지와 마주친다. 처음엔 접촉을 거부하는 청소기와, 집요하게 다가가다 끝내 청소기를 구해내는 강아지. 그렇게 시작된 둘의 여행은 편의점 앞 골목부터 번화가, 다리 위의 야경, 광장의 불빛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모험은 곧 위기로 치닫는다. 건설 현장 최상부에서 맞닥뜨린 위험, 마치 최종 보스처럼 돌진하는 기계와 콘크리트. 강아지는 몸을 던져 친구를 지켜내지만, 결국 청소기는 방전되어 멈춰 선다. 끝내 함께하지 못했지만, 강아지는 멈춰 선 청소기 곁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따뜻한 접촉을 나눈다.
연출의도 이 작품은 주변의 풍경을 픽셀아트로 하나하나 그려보다가, 그것을 이어 단편영화 형식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업무를 병행하며 짬짬이 작업을 이어가다 보니, 완성까지 꼬박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어떠한 인공지능 프로그램도 사용하지 않고, 오롯이 수작업으로 픽셀을 찍어가며 장면을 쌓아올렸습니다. 이 작품은 제게 꾸준함과 기다림의 기록이 되었고, 관객 여러분께는 소박한 풍경 속에서 피어나는 우정과 따뜻한 순간을 잠시나마 함께 바라봐 주실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프로그램노트 <로봇 청소기와 강아지>는 어떤 인공지능 프로그램도 사용하지 않고 손수 픽셀을 찍어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10분 남짓한 이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꼬박 6년이 걸렸다. 말 그대로 한 점 한 점 찍어내는 수고로움을 시작한 계기에 호기심이 가고, 분주한 일상에서도 그런 정성을 틈틈이 이어온 마음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영화는 아파트에 사는 한 가족의 로봇 청소기와 떠돌이 강아지라는 각기 다른 공간을 맴도는 두 존재의 만남을 그린다. 도통 접점이 없는 우리네 일상 속 미미한 존재들을 마주치게 한 상상력과 재기 발랄한 표현 기법에 당신도 금세 빠져들 것이다. 어쩌다 목적을 망각한 사물과 그를 통해 모종의 목적을 찾은 생명체가 펼치는 일탈의 레이스에서 우리의 것이라 믿었던 세상은 오직 그들만의 것이 된다. 한편, 그러한 능청스러움과 별개로 세상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위태로워서 두 존재의 동행을 지켜보는 우리의 손엔 어느덧 땀이 맺힌다. 추격과 도주 같기도 하고, 우정과 연대 같기도 한 이들의 이야기는 과연 어떤 끝을 맞을까. 결말의 희비와 무관하게 일상이 없다면 일탈도 없다는 당연하지만 소중한 깨달음을 환기하는 계기가 이토록 짧은 영화에 있단 사실이 우리를 감동하게 만든다. (함윤정)
작년 부산 인터시티 레지던시 영화제작사업에 선정이 돼서 필리핀 퀘존시티에서 촬영을 했었고요. 영화를 만들 때 공간이 익숙해져야 작품을 쓰는 편인데 아무래도 가보지 못한 공간으로 이야기를 써야 된다는 것이 처음에는 많이 어렵더라고요. 이런 공간이 있으리란 상상으로 이야기를 짠 건 처음이었어요. QCFC에서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시나리오를 보내고 필요한 공간을 부탁드리면 로케이션을 제안해 주셨고 스태프들과 함께 구글맵, 로드뷰를 보면서 머릿속에 먼저 각인을 시키는 과정을 했던 것 같아요.
이야기의 끝에 다다랐을 때는 자신을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 했어요. 동성 친구를 좋아하는 것이 맞나? 좋아하는 감정이 진짜인가? 스스로도 의문이 있었을 거고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느꼈던 곳을 다시 방문해서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었을 거예요. (...) 사실 유안(우영남)에게는 사랑을 불러일으킨 공간이기 때문에 로드무비의 여정에서 나는 동성을 좋아한다는 정체성을 찾아 자기 마음의 집으로 돌아온다는 생각을 했어요.
엔딩은 처음 구상부터 끝까지 지금과 같은 형태였고요. 사랑과 꿈은 분리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이유는 결국 두 인물 다 어떻게 보면 예술가이기도 하니까, 영화 자체로는 사랑을 가져와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것 뿐만 아니라 다른 걸 많이 가져가려고 했습니다. 헤어진다면 남는 게 무엇인가 질문했을 때 다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영화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계속 나아가는 힘이에요. 어쨌거나 계속해서 다음으로 나아가는 힘 .
마지막 장면을 좋아하는데요. 둘이 헤어지고 시현(황정인)은 화면 밖으로 나가고 현수(박지환) 혼자 걸어가는 뒷모습 , 사실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아, 좋다... 이러면서 봐요. 촬영장에서 카메라 모니터를 통해서 헤드셋 끼고 봤는데 그 장면만큼은 제가 창작자가 아니라 관객으로서 영화에 쑥 들어가는 느낌으로 본 기억이 있습니다.
사람이 묻혀 있는 이미지가 떠올라서 시작이 됐는데요. 이미지들을 가지고 서사가 중요하지 않은 느낌을 만들고 싶었고 내레이션으로 엽서 같은 영화를 찍어보고 싶었어요. 한참 책을 읽다가 김승옥 선생님의 책을 인용해 말장난처럼 내레이션으로 썼는데... 무가 파묻혀 있는 게 사람 얼굴이 쏙 나와 있는 이미지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짜기 시작했습니다.
김지윤 배우가 가진 톤이 매력적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또랑또랑 확신에 찬 인물보다는 좀 안개 같고 목소리나 마스크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을 해서요. (...)질문을 많이 하고, 한 번씩 술도 먹고, 배우님을 괴롭혔는데 질문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어두운 얘기들도 해보고 밤에 이불을 차는 순간들이라든가 어떤 음악 좋아하시냐... 시덥지 않은 질문부터 희뿌연 질문들을 하면서 괴롭혔던 것 같습니다.
공간들이 서울의 랜드마크들이거든요. 제가 부산 내려와서 바로 구상한 시나리오라 떠오르는 공간이 서울 밖에 없었어요. 시청 앞 광장에 아이스링크가 있거든요. 거기에서 둘이 같이 왈츠를 추는 장면을 제일 좋아하고 제일 빠르게 작업할 수 있어서 좋아하는 장면 중에 하나고요. (...) 완성하고 한 6개월 정도 지나고 난 뒤니까, 부족한 면만 보이고 더 부끄러운 면만 생각납니다.
제작 처음부터 실사를 넣을 생각이었고요. (...) 일부러 캐릭터들을 완전히 프레임 하단에 위치시켰단 말이에요, 시선보다 낮게. 그러니까 우리 삶이 그렇잖아요. 삶이 고단하고 잔인하고 그런데 잘 안 보이는 곳에서도 어떤 사건들이 있다고요. 이건 실제다, 그걸 강조하고 싶어서 실사를 약간씩 넣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