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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6. 26. (금) 오후 7시 30분 영화의전당 인디플러스
부산로컬시네마데이 Busan Local Cinema Day

로컬 픽, 시간과 빛 Local Pick, Bright Time

참여 | 박천현(<셀프 테이프> 연출) 김종한(<눈 내리는 봄날> 연출)

진행 | 김진태(영화감독)

영화와 나

영화를 만드는 일은 무엇으로 가능해질까요. 자본? 장비? 기술? 6월의 로컬 픽, 시간과 빛은 거기에 필요한 조건들을 나열해도 쉽게 목록에 오르지 않는 것에 주목합니다. 네 편의 단편과 함께 창작자들이 생각하는 영화, 그리고 독립영화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에 대해서.


영화가 사랑하는 일이 되면 함께 하는 사람들, 지속되는 관계들이 작품의 일부가 됩니다. <셀프 테이프>는 장르로는 스릴러와 미스터리로 규정되겠지만, 박천현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편한 사람들’과 ‘사진을 찍듯’ 만든 작품입니다. 카메라 뒤에 있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연출과 촬영을 동시에 하는 이만이 아는 어떤 순간들을 상상해 봅니다.

김경현의 카메라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이들을 향합니다. 불편한 관계 속에서 카메라는 강아지와 세간살이를 담듯 인물들에게 다가갈 수 없습니다. 멀찍이서 다른 데를 보거나 사람들의 얼굴을 프레임 바깥에 놓아두곤 합니다. <한퇴골>은 현대의 명절 풍속도를 그리는 동시에, 그 사이에 흐르는 모자(母子)의 애정을 길어 올립니다.

많은 경우 스태프를 꾸리지 않고 홀로 영화를 만들며 직접 연기도 하는 김종한은 <눈 내리는 봄날>에서 박지혜, 임은욱 두 배우와 함께 합니다. 여전히 작품 곳곳엔 1인 제작자의 경험이 스며 있습니다. 창작의 곤란함을 마주하며 농담을 건네는 태도도 그답습니다.

“시나리오에 대한 제 생각을 말해도 될까요?”

“아니요”

카프카의 단편소설을 연상케 하는 <벌레들>은, 크레딧 대부분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이하람의 단편입니다. 독립영화란 무엇일까. 해묵은 질문 앞에서 이하람은 상황이 충분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끝내 획득해내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지난해 부산독립영화협회상을 수상한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독립영화의 조건은 부족함에 대한 것으로 말해지곤 합니다. 하지만 이 단편들을 보고 있으면 독립영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지금 당장, 여기에서부터 시작해보려는 마음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네 창작자들의 시간과 빛이 오래 이어지기를 바라며, 6월의 로컬 픽, 시간과 빛을 여러분께 전합니다.

셀프 테이프 Self tape

박천현┃극영화┃컬러┃30분┃2025┃대한민국┃15+

시놉시스   유명 배우의 자살 소식이 들린다. 형사는 감독을 찾아가 사건에 대한 이유를 추궁하기 시작한다.

연출의도   안개 속 풍광.

프로그램노트   두 남자가 마주 앉았다. 영화의 거의 절반 가까운 분량이 이 한 번의 대화에 할애되어 있다. 하지만 전혀 느슨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이야기는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두 배우의 연기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게 부딪히며 두 사람을 찍는 카메라의 움직임 역시 적절하고 힘이 있다. 오버 더 솔뎌 숏의 권력도 타당하지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추궁하는 질문을 던질 때 시선 방향으로 당겨온 프레이밍도 신선하며 편집의 리듬도 흠잡을 데 없다. 두 사람이 마주 앉은 이유는 한 여배우가 촬영 준비 중이던 시나리오의 내용대로 얼굴을 테이프로 감싸고 욕조에서 자살했기 때문이다. 한 남자는 그 시나리오를 쓴 감독으로 여배우가 마지막으로 자기 연기를 스스로 찍은 셀프 테이프를 보낸 사람이며, 한 남자는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는 형사. 대화가 진행되면서 두 사람은 상대에게서 죽은 여배우와 연관된 미묘한 지점들을 확인하게 되고 대화는 긴박감을 가지고 결말의 반전으로 향한다. 이야기의 미스터리한 긴장감과, 빗소리가 깔리는 조용한 사운드와 시간의 흐름을 살짝 비튼 전반부의 세련된 편집과 무엇보다 훌륭한 두 배우의 연기가 전형적인 장르 영화의 얼개를 높은 완성도로 빛나게 한다. (여설란)

한퇴골 The Hill

김경현┃다큐멘터리┃컬러┃30분┃2025┃대한민국┃15+

시놉시스   나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외삼촌이 너무 싫다. 사실 외가집 얘기만 나오면 목이 메는 엄마도, 건강이 나빠진 이후로 더 자주 외삼촌과 싸우는 할아버지도, 남탓도 못하고 자책하는 할머니도 모두 싫다. 그러다 유난히 더웠던 어느 추석날, 외삼촌은 키우는 염소를 보여주겠다고 나서고, 나는 끌려가듯 따라간다.

연출의도   명절이 숨 막히고 불편한건 오늘날 평범하고 보편적인 경험일 것 같다. 나는 늘 그 현장을 외면해왔으나, 그날 기록된 소리와 영상은 그 불편함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했다. 녹음된 소리가 주된 소스였기 때문에 나레이션을 삽입하지 않음으로써 현장감을 키워 함께 관찰하고 경험하게 만들고 싶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화해나 구원으로 끝나지 않으나, 돌아가는 길에 듣게 되는 어머니의 노래로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감정과 희미한 가능성을 전달하고 싶었다.

프로그램노트  통영시 도산면 한퇴마을. 매년 명절날이면 엄마와 아들이 이 작은 마을에 들린다. 외갓집에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삼촌들이 살고 있고, 귀여운 강아지들도 함께 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엄마와 아들에게 마냥 편안한 곳만은 아니다. 엄마는 통영의 가족들이 유일한 컴플렉스 같다고 느끼며 남들에게 소개시켜주기 어려운, 즉 감추고 싶은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영화는 그 감추고 싶은 것들을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다. 사실 이미 우리가 영화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감추고 싶지 않은 것, 그들에게는 이미 과거형의 감정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일은 아들이기에 가능한 일, 그리고 아들이자 감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제는 감추지 않고 내놓을 수 있는 일. 모두에게 공개되는 영화를 통해서 엄마에게 다가가는 일. 엄마와 아들은 한퇴마을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간다. 차 안에서의 둘의 대화와 엄마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는 왠지 모르게 편안해 보이며 우리는 함께 드라이브를 하듯 각자의 감정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집으로 돌아간다. (박천현)

눈 내리는 봄날 snowy spring day 

김종한┃극영화┃흑백┃22분┃2025┃대한민국┃15+

시놉시스   감독은 저예산으로 단편영화를 만들려고한다. 배우 한명을 섭외해서 영화를 찍어보지만 영화 만드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영화를 포기한다.

연출의도  적은 돈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다.

프로그램노트   김종한 감독의 전작들을 보면 주로 인물이 혼자 나오며, 그 인물 또한 감독 본인이 등장한다. 즉 자신이 배우이자 감독이며, 더 나아가서는 혼자서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는 등 모든 영화 업무에 혼자서 개입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번 영화에서는 감독 역할을 맡은 임은욱이 등장한다. 영화 속 임은욱은 자신의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배우 역할인 김종한을 만난다. 둘은 영화를 찍는 하루 동안, 짧지만 많은 소통을 나눈다. 같이 영화를 찍고, 피자를 먹고, 커피도 마시며 깊은 고민들을 함께 공유한다. 평소에 찍는 방식을 벗어나 영화에 감독이라는 다른 인물을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를 한참 들여다보면 이것은 감독 자신이 자신에게 주는 작은 위로라고 느껴지기도 하고, 김종한의 전작들을 마치 임은욱이 찍은 것처럼 느껴지게 하기도 한다. <눈 내리는 봄날>은 그렇기 때문에 임은욱이 등장하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지우더라도 영화는 계속된다. 하지만 임은욱이 감독으로 등장함으로써 우리가 보는 이 영화는 김종한 감독 그리고 관객들에게 많은 상상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박천현)

벌레들 About Bugs

이하람┃실험영화┃컬러┃9분┃2025┃대한민국┃15+

시놉시스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어느 방의 문 밖에 모여 각자 맡은 바의 일을 한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연출의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나의 외곡된 어린시절의 관한 망상이 현실로 느껴질때 카프카를 찾았다. 이것은 나의 변신인가, 그들의 변신인가.

프로그램노트   ‘카프카의 변신에 영감 받았음’을 진술하는 짧은 에필로그에 주목한다면 예의 단순한 이야기를 생각할 수 있지만 영화는 카프카의 변신을 살짝 비틀어 어쩌면 카프카가 했어야 할 다른 이야기를 찾는다. 변신의 주인공인 벌레가 아니라 그를 냉담하게 에워싼 혹은 방역하는, 가족이라는 다른 벌레들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한 세기 전 고전 스릴러 영화의 오프닝 같은 사운드와 이미지로 시작하여, 무음과 진동의 연속에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인물들이 연극적인 미장센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분명 플랑세캉스로 촬영되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짧은 컷과 이음으로 인물들의 순간 움직임을 더욱 재빠른 벌레처럼 변하게 한다. 정물처럼 정지해 있다가 이유가 생기면 사사삭 사각사각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서로와 마주 보거나 소통하지 않는 인물들. 망원렌즈로 심도를 낮추어 촬영한 빌딩 숲에 이어, 같은 규격의 상자 같은 집들과 그중 구멍처럼 작은 한 칸 네모 속으로 전진해 들어간 카메라가 구멍 속의 벌레 같은 인물들을 발견하는 오프닝의 재치가 즐겁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벌레로 대접받던 숨겨진 존재마저 빠르게 그들을 벗어나는 마지막 장면은 설득력을 확보한다. (여설란)

상영 후 토크┃박천현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큐어>를 굉장히 무섭게 봤거든요. 사건들이 겉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관통하는 메시지가 전염되듯이 퍼져나가는 게 공포스럽잖아요. <셀프 테이프>는 일종의 배우, 아니면 감독에 대한 영화, 영화에 대한 영화이긴 하지만, 뭔가 각자 갖고 있는 감정들이 터질 것 같은 부분들이 있죠. 배우 입장에서는 감독에게 어떤 원망 같은 것이 있을수도 있고 감독도 감독 입장에서 뭔가 터질 것 같은 마음이 있을 테니까요. 영화는 <큐어>에서 시작한 것 같아요.


최대한 소수의 인원으로 스태프를 꾸리는 게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일단 촬영과 연출을 같이 하는 가장 큰 장점은 제가 소통할 필요가 없잖아요. 만약 역할이 분리돼 있으면 그걸 소통해야 하는데, 전 그냥 제가 하면 돼요. 제가 의도한 바를 바로 찍어내면 되니까 빨리 찍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저도 사실 여건이 된다면 장편을 찍게 된다든가 그런 때에는 촬영 감독님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해요. 기술적인 부분들은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 하니까, 촬영 감독님과도 작업하고 싶습니다.


미스터리, 장르적인 형식들이 있는데 물론 저도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면서 영화를 찍긴 했는데요. 저한테는 사실 그게 중요하지는 않았거든요. 형사라는 사람이 이제 감독을 방문 하잖아요. 근데 형사도 연기를 하는 거잖아요. 이 사람이 범인인지, 아니면 어느 순간에 누가 범인인지 밝혀져야 되는지, 그거는 저한테 사실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관객들이 이 사람이 연기를 하고 있고 감독한테 그 연기를 성공시킨다는 개념으로 저는 접근을 했어요.

상영 후 토크┃김종한

제가 혼자 찍던 버릇이 있어서요. 혼자선 보통 카메라 세워놓고 많이 촬영하다 보니까, 극영화인데도 느린 템포를 유지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내용상 인물 설정으로는 그래도 배우이니까, 하루 전날까지 연습을 많이 했다는 설정을 해가지고요. 연습을 많이 해서 왔지만 감독이 지금 촬영을 펑크낸 거예요. 아무도 없을 때에 한번 그동안 연습했던 춤을 한번 춰보자. 그런 생각으로 춤을 추는 거예요. 그런데 정작 뒤를 못 본 거죠. 열심히 춤을 추다가 한번 뒤돌아봤는데, 사람들이 오고 있어서 민망해 하면서 끝나는 장면을 생각했습니다.


영화를 만들 때는, ‘아, 이건 정말 내가 만드는 영화일까?’ 싶을 정도로 좋은데, 또 며칠 지나면 현타가 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봄날이 왔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눈이 내리고 있는 감독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감독은 봄날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 눈이 엄청 내리는, 시련의 과정을 겪게 되는 거죠. 모든 감독이 비슷할 거라 생각합니다. 시나리오 쓸 때는 이거 대단하다. 내가 천재인 것 같다. 그렇게 느끼다가도 지나고 나면 누구한테 한 소리 들으면 때려 치울까? 생각하듯이요. 끊임없이 누군가로부터 용기를 받아야만 전진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주로 내레이션을 많이 쓰거나 지문 같은 걸 많이 활용 했는데요. 이야기를 전개할 때 시나리오를 대사만 가지고 전개를 해야 된다는 게 너무 어려워요. 오늘 써가지고 보면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일주일 지나서 보면 미치겠고, 버려야 되겠고. 그런 식이어서 제가 시나리오를 써본 건 되게 많은데, 다 버리다 보니까요. <눈 내리는 봄날> 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그나마 만들어 보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