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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픽, 시간과 빛 Local Pick, Bright Time
참여 | 소유현(<한 번만 더> 연출) 이남영(<낯선 사람들> 연출)
진행 | 박천현(영화감독)
언어는 세계를 구성하고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결코 모든 것이 언어로 환원되지는 않습니다. 말해지지 않거나 말해질 수 없는 잔여를 포함할 때 이 세계가 감각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번만 더>는, 온통 발화의 주체와 층위가 어긋나며 의미를 확정하기를 유예하는 순간들입니다. 반복과 변주로 배열된 숏들은 서사를 전진시키기보다 정서와 감각을 직조합니다. <낯선 사람들>은 서사가 공간으로부터 발생하는 어떤 순간을 보여줍니다. 카메라가 중앙동 일대 골목들을 섬세하게 더듬어가면, 장소는 더 이상 인물의 배경에 머물지 않고 그곳에 스민 시간과 흔적을 서사의 일부로 끌어들입니다. 보는 행위란 과연 중립적 지각을 담보하나요? <한낮의 UFO를 믿으시나요>는 그것이 믿음과 욕망에 매개된 행위임을 환기합니다. 초반부 빛과 그림자로 만든 이미지들은 흥미로운 대화에 담긴 인식에 관한 문제를 선취합니다. 4월의 "로컬 픽, 시간과 빛"을 통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말해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 사이를 거닐며 이 세계를 낯설게 감각하는 또다른 지각의 경험과 만나시면 좋겠습니다. (부산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김지연)
한 번만 더 Just one more time
시놉시스 꼭 한번 보고 싶은 순간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상담실. 그곳에서 희윤은 대본을 쓰고, 지아는 연기를 한다.
연출의도 지나간 것에는 늘 미련이 남는다. 이는 우리가 계속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속 잔여물에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쉽게 잊으라 말하지만, 무시된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쌓여간다.
프로그램노트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한, 하면 안 되는데 해버린, 해야 하는 말 혹은 일들. 무엇이건 과거형으로 남겨두지 못해 지속되는 것들이 현재의 나를 이룬다. <한 번만 더>의 인물들과 우리는 그 미완의 시간을 살아가는 범속한 존재들이다. 영화에 흐르는 말과 글, 이미지들은 표면일 뿐 그 심연을 헤아리는 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겠다. 영화가 그렇듯이 얼마간은 꾸며내고 또 얼마간은 사실일 말들. 이를테면 지아의 발화는 종종 희윤이 쓴 대본을 읽는 건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는 것인지 그저 상상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두 사람의 대화 또한 사담, 상담, 역할극의 경계를 오가고는 한다. 설명적인 숏을 배제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상담자와 내담자가 앉은 자리, 또는 발언의 주체를 바꾸면서 모호함을 의도한 결과다. 두 사람의 대화를 포착하는 가장 익숙한 방식인 오버 더 숄더 숏 대신에 얼굴과 얼굴의 클로즈업으로 연쇄되는 숏들이 자아내는 리듬도 나는 좋다고 말해야겠다. 영화는 인물의 기억과 생각, 그들이 나누는 대화들, 다시 말해 말과 이야기로 쌓아올린 세계다. 그로 인해 평범한 상담실은 돌아올 수 없는 시간, 혹은 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시간이 펼쳐져 시공을 초월한 공간처럼 보이고, 쓸쓸한 내면의 풍경처럼 빈 정류장과 버스, 도시의 밤이 주는 정취가 아름답다고도 말해야겠다. 스스로 설명하지 않으려는 영화를 긴 문장으로 좇는 이 아이러니도 영화를 사랑하는 법들 중에 하나일 테니까. (김지연)
낯선 사람들 someday we met
시놉시스 부산의 오래된 원도심 중앙동, 언젠가 있었던 것들과 아직 오지 않은 것들 사이를 거니는 한 여자와 한 남자의 하루.
연출의도 사람과 장소, 시간과 이야기 사이 보이지 않는 연결을 함께 보려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프로그램노트 여자는 부산 중앙동에서 오래된 건물을 찾고 있다. 영화 로케이션을 물색하러 이곳에 온 눈치다. 남자는 그런 여자에게 동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옛 건물이 많은 골목으로 그녀를 안내한다. 산을 깎아 바다를 메웠다는 곳, 찾는 이가 없어 문을 닫은 지 오래되었다는 가게, 주인 없이 남겨진 방들. 공간들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모습을 바꾸다 어느덧 쓰임을 다한 채 누군가 다시 써줄 새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편, 동행이 계속되면서 두 인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 관한 이야기까지 대화의 주제로 끌어들인다. 뼈대조차 남지 않은 빈터에 선 남자는 언젠가 이곳에 있었을 누군가의 집을 떠올리며 가상의 스토리텔링을 시작한다. 여자는 남자가 세운 허구의 공간에 자신의 기억을 겹치며 이야기에 생명력을 더한다. 장소에 대한 물색과 공간에 대한 탐색은 이제 삶에 대한 호기심으로 자리를 옮겨간다. 그렇게 허구의 인물들이 상상하는 실제의 삶이, 여태껏 그들의 걸음 뒤로 배경처럼 스치던 낯선 사람들의 모습이 프레임에 전면화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성사된 신묘한 만남에서 또 한 편의 스토리텔링이 전개될 때, 우리는 오래된 건물처럼 우두커니 서서 어떤 이야기와 새로이 대면하게 될 것이다. (함윤정)
한낮의 UFO를 믿으시나요
Midday UFO
시놉시스 문주는 평소 선망하던 기자 재흥을 만난다 재흥은 문주에게 대뜸 UFO를 믿는지 묻는다.
연출의도 세상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인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믿음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계속해서 의심하며 들여다봐야 하는 것일까요.
프로그램노트 당신이 만약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다면, 초당 프레임을 60으로 설정하여 하늘을 동영상으로 찍고 그 화면을 프레임 단위로 검토해 프레임 상을 빠르게 움직이는 UFO를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누군가 말한다면 당신은 그 말을 믿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만약 그 사람이 기자 지망생인 당신이 해답을 구하고자 하는 선배 기자라면, 혹은 가장 친한 친구라면, 아니면 주변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하늘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면. 처음 UFO를 촬영하자던 선배 기자는 ‘눈으로 봤는데 왜 못 믿어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을 전해 듣고 하늘을 촬영해 본 친구는 ‘믿는데 왜 못 봐?’라고 반문한다. 뫼비우스의 띠 같은 상황. 오늘날 같은 정보 과잉의 시대, 본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재미있고도 시의 적절한 이야기다. 그런데 처음 선배 기자는 ‘이건 벌레가 아닌가요?’라고 의심하는 주인공에게 ‘에이 여기 벌레가 어디 있어요’하며 웃는다. 이 넓은 공간에 벌레보다 UFO가 촬영될 것이 더 확실하다는 일종의 믿음. 인간의 눈은 원래 보고 싶은 것을 본다는 지적이 있다. ‘보았으니 사실이다’라는 확신 이전에 내가 그것을 보고 싶어 한 이유도 의심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인물들의 첫 등장을 그림자 이미지로 처리한 오프닝 장면도 의미심장하게 보인다. (여설란)
노래방에 가면 항상 나얼의 “한 번만 더”를 부르고 시작을 하는데, 거기서 영감을 받은 건 아니고요. 저는 좀 지질한 캐릭터여서, 늘 후회를 하며 “그때 왜 그랬을까”, “그때 그 상황이 또 있으면 이렇게 해야지” 그런 식으로 일어나지 않은 일에 계획을 세우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답답해 하고, 그만 좀 잊으라고 하지만 뭔가를 쉽게 잊으려고 하는 게 중요한 걸 잊으라고 하는 느낌이기도 해서요. ‘한 번만 더’ 뭔가를 했으면 좋겠는 사람들을 다 모은 영화를 찍고 싶다, 그래서 제목은 처음부터 그렇게 정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배우님을 참 곤란하게 하는 디렉팅 같아요. “이 장면에서는 건조함 57%에 약간의 호감 몇 퍼센트,” 이런 식으로 주문을 해요. 그러면 배우님이 1% 더한 버전을 한 다섯 개를 해 주세요. 그러면 “3번이 좋아요” 이런 식으로 디렉팅을 했고요, 희윤(김치성) 경우에는 영화에서 마스터베이션 하는 장면이라든지 지아(박신혜)를 향해 어떤 식으로 마음이 열리는지에 대해서 계속 얘기를 나누었어요. 여기서는 지아에게 어떤 호감인가, 이성적인가 아닌가, 이런 걸 계속 얘기했고, 박신혜 배우도 워낙 잘해주셔서 “다정함을 여기서는 40%, 여기서 60%” 이런 식으로 말씀 드리면서 소통을 했습니다.
이야기를 쓰다 보면 제 경험이 아니어도 제가 본 거, 아니면 누군가가 저에게 말했던 거, 제가 봤던 다른 작품에서 누군가가 했던 거, 이런 식으로 다 연결이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희윤이 한때 영화를 찍고 싶었던 건 저의 내면이 반영된 거라고 생각하고, 여자 내담자 분의 이야기라든지 지아의 이야기라든지 그런 것들은 엄밀히 따지면 저의 엄마 이야기일 수도 있고, 그런 서사를 가진 어머니는 세상에 많아요. 그런 식으로 제가 생각하고 느꼈던 거지만 그게 저만의 것은 아니니까, 자전적인 이야기에 머물지 말고 확장시키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영화를 찍으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가 시나리오를 생각하면서 떠오르는 심상들로 제목을 짓게 되는데요. 낯선 사람들이라는 90년대 때 활동했던 재즈 보컬 그룹이 있는데 낯선 사람들의 “낯선 사람들”이라는 노래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그 노래를 그때 들었나 봐요. 제목을 어떤 걸로 지을까 하다가 이 노래가 떠올랐고, 제목이 괜찮은 거예요. 영화랑도 잘 들어맞는 것 같고, 보는 사람들이 대할 때도 너무 직접적이지 않으니까 영화와 연결지어서 각자의 어떤 생각들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겠다 싶어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알고 있는 장소들이라 가기도 쉬웠고 저희 사무실 바로 근처였고 친분도 있는 공간이라서 최대한 미리 가서 현장 리허설에 시간을 많이 들여서 했어요. 대본 들고 같이 가서 걸어보고, 걸으면서 느낌이 어떤지, 이 대사를 할 때 어떤 것 같은지 그런 걸 계속 확인했고요. 그런 것들이 중요하다는 걸 점점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현장에서 배우들이 어떻게 저 공간을 이해하고 움직이고 싶어 하는지를 포착하는 게 제 역할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그걸 더 잘하고 싶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전 작업까지는 제 안에서 해소되지 않는 질문들을 영화로 만들어 왔는데 제가 경험한 관계들에 대한 질문들이었어요. 말하자면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죠. <낯선 사람들>은 제 관심의 방향이 옮겨가고 있는 과정에서 나온 작품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 이런 것도 잘 하고 싶고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도 더 잘하고 싶어요. 그래서 구분을 하지 않을 것 같고요. 그런 과정에 있는 작품으로 <낯선 사람들>을 만들게 된 것이고 그러면서 저를 점검하게 되는 기회이기도 하죠. 제가 세상과 세계와 대화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을 해요. 영화를 만드는 과정과 영화를 만들고 나서 알게 되는 사실, 저에 대해서 알게 되는 사실들이 사후에 다 따라오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