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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1. 28. (금) 오후 7시 30분 영화의전당 인디플러스
부산로컬시네마데이 Busan Local Cinema Day

로컬 픽, 시간과 빛 Local Pick, Bright Time

참여 | 오민욱(<산산조각 난 해>연출) 진행 | 조은비(부산시립미술관 학예사)

산산조각 난 해

Letters from the Shattered Years

오민욱┃다큐멘터리┃혼합┃90분┃2024┃대한민국┃15+

시놉시스   밀봉된 과거를 열어 미래로 향하는 시간을 잠시나마 붙잡아두며

연출의도   <산산조각 난 해>는 오랜 시간 촬영 기기를 통해 수취했던 무수의 이미지와 오래된 편지에 관한 작품이다. 촬영을 통해 수취한 장면들을 열람하는 과정은 선형의 논리로 정렬되지 않는 불확실성을 불러오는 일이다. 모든 것이 무너진 자리에서 피어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재건할 수 없는 존재들이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산산조각 난 채 허물어져만 가는 시공을 버텨내는 존재들이 있다.

프로그램노트   2023년 부산시립미술관 전시 작품 <마모>로부터 확장된 <산산조각 난 해>에 흐르는 이미지들은 오민욱의 일상과 사건, 영화, 혹은 영화가 되지 못한 잉여들의 아카이브다. <해협>(2019), <유령의 해>(2022)로 이르는 동안의 시간 위로, <해협> 이후 함께 <새로운 해>를 만들기로 했던 샤오 카이츠의 목소리가 편지를 낭독한다. 오민욱의 결혼을 축하하는 편지, 그에 대한 답장, 그리고 오민욱이 갓 태어난 조카에게 쓴 편지. 사진과 영상은 때로는 그 구분이 무색해 보일 만큼 느리게 움직인다. 뒤로, 혹은 앞으로. 맥락을 알 수 없거나, 거칠거나, 의도적으로 흐리게 처리해 형상을 알아보기 어렵거나, 단속적으로 밀리며 변형된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산산조각이고, 기억과 의식에서 꺼내온 편린처럼 명료한 맥락을 파악하기 어렵다.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를 떠올리며 제목을 '산산조각 난 (새로운) 해'로 읽고 애상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좌절, 고통, 슬픔 같은 것에 침잠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건 영화가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했기 때문인 것 같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정호승의 시다. (김지연)

상영 후 토크┃오민욱

<해협>이라는 영화를 2019년 10월에 공개하고 그즈음 다음 작업도 동시에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2020년 3월에 첫 촬영을 홍콩에서 하려고 준비를 거의 마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팬데믹 때문에 다 취소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모두 아시는 것처럼 통제되고 뭐 그런 시간들을 보내게 됐어요. (...) 그래서 앞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스스로 할 정도로 힘들었는데 그러다가 22년에 <유령의 해>라는 작품을 만들고 발표를 하게 됐는데 뭔가 그 시기에 대한 나름대로의 관점이나 맺음,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는 작업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나름대로 그 시기에 대한 맺음을 하고 싶다는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까 과거에 대한 것들을 좀 돌아보게 됐죠. 그래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작업입니다.


‘뿌려지는 것들’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것들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했던 것 같아요. 19년에 생겨났었던 편지로부터 시작해서 그 편지에 대해서 나름대로 답을 쓰는 방식으로 영화의 외형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게 표면일 뿐이지 핵심은 아니라는 생각도 했거든요. 편지에서는 내용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 작업 자체가 내용을 구현하는 방식으로 이미지 전략을 쓰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그건 그냥 청각적인 하나의 재료 정도라고만 생각을 했어요. 영화 자체가 주어야 하는 감각은 ‘침묵’이라는 방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미지 자체로 움직이거나 멈추거나 하는 방식을 통해서 총체적으로 어떤 감각을 형성할 수 있는가가 훨씬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현실과 허구를 이야기해 본다면 역사적인 것이 그 중심에 있을 것 같아요. 언급하고 있는 인물들이나 사건들이 역사적인 것 혹은 역사 그 자체로 분류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과연 그 자체가 어떤 방식으로 과거 실제의 일이라는 것을 증명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을 항상 하게 되는 것 같아요. (......) 사실적인 것이 허구적인 방식으로 이해될 수도 있고 반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역사서를 본다고 했을 때 그것에서 소설의 감각을 읽는다거나 소설을 읽을 때 너무 현실에 기반해 역사적인 순간을 기술하고 있다고 느낀다거나, 그걸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이 영화 역시 편지의 내용을 허구라고 생각을 했을 때와 진짜 저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때 많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