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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3. 31. (금) 오후 7시 30분 영화의전당 인디플러스
부산로컬시네마데이 Busan Local Cinema Day

로컬 픽, 시간과 빛 Local Pick, Bright Time

참여 | 윤지혜(<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연출) 진행 | 함윤정(영화평론가)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

The Day after Yesterday

윤지혜┃극영화┃컬러┃76분┃2022┃대한민국┃15+

시놉시스   늦은 밤, 영화를 보고 나온 민영과 우진은 폐 구조물 앞 도롯가에서 이별한다. 불 켜진 우진의 집 주변을 서성이던 민영. 돌아서 나온 골목길 위에는 또한 헤어지는 중인 두 남녀가 서 있다.

연출의도   우리는 늘 어떤 곳 위에 서 있고, 누군가와 마주하며 또 누군가와 이별한다. 그리고 벗어날 수 없는 미로 같은 기억 속에서 방황한다. 때로는 그 처연한 기억 속에서 헤매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이곳엔 당신이 없지만 그곳에는 당신이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프로그램노트   극장 안, 퍽 길고 재미없어 보이는 영화가 상영 중이다. 폐건물, 기찻길과 교량, 동네 골목 등의 혹백 정경이 파편적으로 나열된다. 한 여자가 나타나더니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거야. 우리는 기억 속에서만 만나게 될 거야."라는 식의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읊조린다. 대개의 관객은 슬그머니 줄고 있다. 하지만 한 쌍의 남녀는 깊은 생각에 잠긴 양 스크린을 응시한다. 영화가 끝난 후 밖으로 나온 남녀는 함께 밤길을 서성이다가 이별한다. 이윽고 여자는 어떤 영화 촬영장에 도달하고, 극장에서 봤던 영화 속 여자와 만난다. 둘은 영화 속으로 진입해 모종의 이야기를 나눈다.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는 불친절하다. 이야기는 얼기설기 이 어져 논리적으로 규명하기 어렵다. 인물들의 대화 역시 자신들의 상황을 명쾌히 알려주진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길고 재미없는 영 화가 끝나갈 때〉는 극도로 친절하다. 상상의 여지를 한껏 키우는 서사의 여백, 관습적인 인과가 배제된 이미지들의 몽타주, 대사 안 의 시적 공백들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해석을 일원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는 영화 속 서사, 이미지, 말, 인물들 간의 의도 된 틈들에 대해 각자의 능동적인 감상을 만끽할 수 있게 된다. (이우빈)

상영 후 토크┃윤지혜

거대한 목표는 아니었는데 제가 이별에 대한 얘기를 아직 한 번도 안 해봤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만약에 이별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궁금했고 그런 생각으로 처음에는 가볍게 각본을 쓰고 영화를 구상하게 된 것 같아요. 그 이상의 거대한 목표나 시작점은 없었던 것 같고요. 영화의 속도가 굉장히 느리잖아요. 제가 생각보다 평소 발걸음이 빠르거든요. 그런 제가 굉장히 느린, 평소에 일상에서 감각하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느린 감각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이런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리듬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거를 실험해보고 싶단 생각으로 이 영화를 구상했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의 감정을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로케이션들이 정해진 것 같은데 굉장히 공허하고 쓸쓸하고 뭔가 텅 빈 느낌들이 가득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장소들도 주인공과 닮은 공간들을 찾고 싶었어요. 폐공장이라든지 허물어질 것 같은 건물들을 찾아다녔던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 멀쩡한 건물보다는 유령 같은 공간이라고 해야 되나, 쓰러질 것 같은 공간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찍어두기도 하고 지나가다 보면 기억해 두기도 하고. <목요일>이란 이전 작품에 나왔던 공간이 여기서도 그대로 나오거든요. 고등학교 때부터 지나가면서 봤던 공간이었는데 그런 공간들을 오래 마음속에 담아두고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뭔가 그런 장소들을 배경으로 계속 영화를 찍고 싶다는 마음이 은연 중에 들더라고요.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 눈을 뿌리는 버전과 안 뿌리는 버전을 다 찍었어요.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내가 눈이 내리는 장면을 선택한다면 과연 어떤 의미일까를 곱씹어 보면서 편집할 때 선택하게 된 장면인데요. 어쨌든 이른 아침이 되고 모든 것이 사라지죠, 마치 거짓말처럼. 그래도 뭔가 민영이라는 주인공에게 미미하게 남아있는 것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여자와 보낸 밤에 눈이 내리잖아요. 그래서 그게 마치 조그마한 증거라도 되는 것처럼, 바람처럼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게 다 사라졌지만 일말의 남아있는 무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