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부산 중앙동에서 오래된 건물을 찾고 있다. 영화 로케이션을 물색하러 이곳에 온 눈치다. 남자는 그런 여자에게 동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옛 건물이 많은 골목으로 그녀를 안내한다. 산을 깎아 바다를 메웠다는 곳, 찾는 이가 없어 문을 닫은 지 오래되었다는 가게, 주인 없이 남겨진 방들. 공간들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모습을 바꾸다 어느덧 쓰임을 다한 채 누군가 다시 써줄 새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편, 동행이 계속되면서 두 인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 관한 이야기까지 대화의 주제로 끌어들인다. 뼈대조차 남지 않은 빈터에 선 남자는 언젠가 이곳에 있었을 누군가의 집을 떠올리며 가상의 스토리텔링을 시작한다. 여자는 남자가 세운 허구의 공간에 자신의 기억을 겹치며 이야기에 생명력을 더한다. 장소에 대한 물색과 공간에 대한 탐색은 이제 삶에 대한 호기심으로 자리를 옮겨간다. 그렇게 허구의 인물들이 상상하는 실제의 삶이, 여태껏 그들의 걸음 뒤로 배경처럼 스치던 낯선 사람들의 모습이 프레임에 전면화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성사된 신묘한 만남에서 또 한 편의 스토리텔링이 전개될 때, 우리는 오래된 건물처럼 우두커니 서서 어떤 이야기와 새로이 대면하게 될 것이다. (함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