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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5. 26. (토) 오후7시 무사이 극장

인디크리틱 인 무사이 Indiecritic IN Mousai 

정지혜(영화감독, <정순> 연출) 김아카(여성영화 시네마테크 '씨네팸' 프로그래머)

정순 Jeong-sun

정지혜┃극영화┃컬러┃105분┃2021┃대한민국┃15+

시놉시스   동네 식품공장에서 일하는 정순은 세월에 억척스러워질 법도 한데, 자신의 이름처럼 여전히 정순하게 살아간다. 그런 정순에게 공장 동료이자 또래인 영수가 다가온다.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며 둘만의 은밀한 관계를 즐기고, 영수는 그 관계를 휴대폰 카메라로 담는 것을 즐기는데... 그러던 어느 날,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연출의도   디지털 성범죄가 점차 공론화되고 있지만, ‘디지털’이라는 측면 때문에 중년여성이 디지털 성범죄를 겪을 수 있다는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한편 공장에서 일했을 당시, 권력을 쥔 누군가의 무례한 행동에도 이모들이 각자만의 방식으로 유연히 대처하시는 모습을 봤고, 이를 존경심을 갖고 이야기로 쓰고 싶었다. 그래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보편적 인물을 객관화해 ‘정순’이라는 캐릭터를 완성했다. 궁극적으로 영화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가 특정 세대와 연령층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모두의 문제라는 걸 인식하면 좋겠다.

프로그램노트   정순은 오늘도 출근한다. 식료품을 포장하고 납품하는 공장에서 흰색 작업복을 입고 작업장의 클린룸을 거치고 오늘도 그녀는 일한다. 그녀는 이제 곧 결혼을 앞둔 딸을 챙겨야 하고 깐깐하게 구는 회사의 직장 상사를 달래야 하며 어린 동료들과 하루를 어울리고서는 집 안 정리도 도맡아야 한다. 정순의 삶에는 누군가의 침범을 방어해야 하고 누군가의 눈치도 보여야 하며, 다른 이의 뒷담화도 덤덤히 넘겨야 한다. 그러나 오늘도 그녀는 최선을 다해 자기 삶에 예의를 갖춘다. 그런, 그녀의 일상에 영수가 등장한다. 어딘가 어리숙하고 일머리도 없는 그는 몸도 성치 않아서 누군가에 의지해야 한다. 그런 이들을 지나치지 못하는 정순은 어느새 그가 눈에 밟힌다. 그리고 그와는 오랫동안 감췄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고 싶다. 정순은 그런 사람이다. 예의 바르고 솔직하고 누구보다 주위 사람을 아낀다. 하지만 솔직한 감정 표출이 누군가에 의해 박제되고 공유되며 희화화된다.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이 참사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소비된다. 가해자도 공범자도 심지어 그녀의 딸조차 피해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그리고 당연히 이 상황을 제대로 대면하고 수습할 수 없다. 이것은 애초에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든 대상화의 대상이 아니며 오롯이 자신의 행위는 그 자신에게만 결정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시대에 만연한 불법 촬영과 그 파장을 정순이라는 인물을 통해 직접적 피해 사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제시되는 타인에 대한 침범과 서로에 대한 간섭에서 끝까지 자신의 마음에 대해 예의를 지키려는 정순을 만나게 한다. 그렇게 영화는 우리가 타인에 대한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여지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박성림)

상영 후 토크 | 정지혜

유진이 정순의 집으로 들어가려고 짐을 싸다가 예비 남편인 성호가 이렇게 손을 잡아준 신이 있는데요. 유진이라는 캐릭터에도 제가 큰 애정을 쏟았는데 (…) 유진이 처음으로 솔직하게 감정이 드러내는 신이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성호의 되게 안정적인 인물의 캐릭터도 되게 보여줄 수 있는 신이라서 시나리오를 쓸 때도 좋아했던 장면이에요.


사실 초반에는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던 시나리오였는데 그런 결말을 쓰면서 스스로 이게 과연 맞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짜릿한 복수극으로 관객분들과 정순에게도 사이다 감정 같은 걸 일시적으로는 전달드릴 수 있겠지만 그게 너무 쉽게 휘발될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그게 어떻게 보면 제 스스로 정순에게 좀 무책임하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이 있을까를 조금 더 고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이후에 지금 버전으로 수정을 하게 됐고요.


한 작품 한 작품 경험을 해볼 때마다 정말 큰 걸 하나씩 얻어가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도 지금 <정순>을 찍었을 때를 돌아보면 <정순>을 찍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뭔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맞을까라는 의문이 들 때 그냥 자기를 믿고 그 경험에 자기를 좀 던져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제가 많이 했어서 그런 이야기를 (후배 여러분들께) 나눠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