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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투 로컬 3
시련과 입문
Trials and Initiation
백종관┃실험영화┃컬러┃71분┃2025┃대한민국┃15+

여기 한 배우가 있다.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의 지극히 위협적인 틈새에 머물기를 요구받은 이. 알 수 없는 오류로 인해 과거의 흔적들이 지워진 공백 속에서 그는 자신만의 각본을 조립하기 시작한다.
나도 배우도, 가상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주체인 동시에 그런 환상 만들기를 통해 변화를 겪는 존재이다.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는 삶 속에서 영화라는 매체는 얼마나 쇠약한 것인가, 그럼에도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가.
이런 실험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를 언어로 풀어낸다는 일이 얼마나 무용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감독이 있고, 배우가 있다. 배우는 감독의 요청에 따라 오류를 지니고 출력된 여러 문헌을 토대로 하여 한 편의 각본을 써 내려간다. 이 오류가 누구의 의도로, 어떠한 이유로 진행된 것인지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기실 그 배경이 크게 중요하지도 않다. 작중 인물의 말처럼 이 영화는 “뜻이 없지만 뜻이 있는 것처럼” 무언가를 해석하는 행위에 방점을 두기 때문이다. 아포페니아. 실질적 연관성이 없는 현상과 사건을 별자리처럼 연결하며 특정 패턴과 의미 체계를 만들려는 인간의 인지적 경향을 뜻한다. <시련과 입문>은 이 아포페니아의 논리로 진행된다. 배우는 백색 용지에 드문드문 출력된 알파벳 몇 개, 철자가 틀린 단어, 이상하게 반복되거나 조각난 어구들을 끼워 맞추려 노력한다. 한편, 그런 배우의 모습을 다시 파편화하고 재매개하여 여러 영상의 형태로 치환한 결과물이 교차 재생된다. 요컨대 <시련과 입문>이 보여준 언어의 무력함은 반대로 꽤 큰 언어의 가능성을 자아내기도 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꿈보다 해몽. 우리가 영화를 보고 세계를 마주하는 과정은 이처럼 아주 느슨하면서도 그럴듯한 시련과 입문의 연속으로 결성된다. (이우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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