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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상영 1
길 위의 시간
Time on the Road
김라┃다큐멘터리┃컬러┃31분┃2020┃대한민국┃15+

낮 12시가 되면 일흔이 넘은 나이의 두 분이 1인시위를 하러 매일 국회 정문 앞에 선다. 벌써 11년 가까이 어김없다. 늙은 두 부부 강사의 집은 충남 당진이다. 이 먼 길을 매일 오갈 수 없어 국회 앞에 천막을 쳤다. 이 천막 안에서 먹고, 자고, 공부하고,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목소리를 높여야 할 곳을 찾아 나선다. 요즘 매일 들리는 곳은 국회 앞과 고려대 농성천막과 청와대 광장이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배회하는 대학의 시간강사는 지금까지 교원(선생)이 아니었다. 국회가 강사법을 고쳐준다면 다른 교원(교수)들과 마찬가지로 방학 중에도 강사료 받고, 4대 보험 보장, 대학 내의 협의회에 참여할 수 있다.
길 위에서 살아온 세월 11년, 비바람 휘몰아치는 땅바닥을 한걸음 한걸음 걸어간다. 이 두 늙은 강사를 버티게 해준 신념은 무엇인가? "한 사람이라도 서 있으면 이정표가 된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현재를 가능하게 해준, 역사의 발걸음이 도도한 이네들의 강인한 인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10여 년 넘게 국회 앞을 지켜온 노년의 강사들. 그들은 하루하루 천막을 지키며 강사법 개정을 외친다. 한때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이들은 이제 피켓을 들고 국회 앞 도로에 선다. 그러나 그들의 하루는 거창한 투쟁의 구호보다, 버티고 살아내는 일상에 가깝다. 김미라 감독의 카메라는 그 시간을 결코 초라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을 밀어내지 않고 견디는 인간의 존엄, 그리고 시간을 통과하는 몸의 무게를 낮은 시선으로 응시한다.
천막 아래에서 수업 자료를 정리하고, 찾아온 학생의 진로 상담을 이어가며, 가족의 조용한 도움을 받는 장면들은 ‘투쟁’과 ‘생활’의 경계를 허문다. 도시의 소음과 뜨거운 바람이 스며드는 천막 아래, 미안함과 연대의 감정이 교차하고 투박한 화면은 감정을 고조시키기보다, 매일의 반복 속에 깃든 체념과 지속을 담담하게 포착한다.
<길 위의 시간>은 외치는 대신 바라보고, 단정하지 않고 오래 머무른다. 낮게 든 카메라가 피켓과 가방을 든 이들의 뒷모습을 따라가며, 멈추고, 다시 걷고, 돌아오는 그 반복 속에서 삶의 리듬을 기록한다. 영화의 마지막, 접혀지기 전 천막이었던 것의 얼룩과 주름은 그들이 지나온 시간을 고요히 증언한다. 서두르지 않고 응시하던 카메라는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던 방식이자, 우리에게 남긴 어루만짐이다. 보이지 않던 시간과 사람들을 비춘 그녀의 시선은 이제 우리 곁을 떠났지만, 여전히 그 길 위에 머문다. 그의 프레임이 닿았던 자리마다 사람과 시간의 존엄이 조용히 빛나며, 세상은 그렇게 누군가가 지켜낸 권리 위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정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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