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존재의 층위가 겹쳐진다. 유리 수조 안에서 대사 없이 효과음에만 의지해 퍼포먼스를 펼치는 연기자들과, 이들이 일일이 언어로 설명하여 물속 퍼포먼스에 함께 참여시키는 시각 장애인 연기자. 그러나 이런 설명은 너무 안일하다. 존재의 형태와 환경은 너무도 다양해 지금 내가 어느 층위에 존재하는 누구인지 사실 단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리가 사라지는 물속의 세상일 수도 있지만 유리창 벽 속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실루엣은 무음의 공기 수조 속에 떠다니고 있기도 하다. 눈과 이미지는 탐욕스럽다.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감각과 생각을 이야기하는 시각 장애인을 클로즈업할 때 이 존재를 진정으로 포착하기를 갈망하며 다가간다. 이렇게 말하게 되는 이유는 이 진지하고 순수한 화자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차들의 소음 속에 들리는 파도와 벌레와 새들의 소리에 멈춰 서서 고개를 젖혀 귀를 기울이는 그의 말들은 과연 나의 감각은 세상을 진실되게 마주하는지 의심해 보게 한다. “보이지 않는다는 건 좀 더 귀를 열고 눈을 감지 말아야 할 이유”라고 그가 말할 때 세상을 활짝 연 감각으로 껴안아야 함을 느끼며 오히려 눈을 감고 싶어진다. 그때 카메라는 그의 귀를 바라보며 온갖 소리들의 세상에 집중하는 그를 촉각 한다. (여설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