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무언가 사라진 자리는 또 다른 무엇으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엄마의 빈자리를 모자람 없이 채워준 할머니 덕에 할 수 있었던 생각이다. 그러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현수는 전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말하자면, 대체가 아닌 잔여에 관하여. 할아버지가 떠난 자리에 남은 건 무엇이었을까. 할아버지의 기타가 무언의 답처럼 현수의 눈에 들어오고, 그때부터 현수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어느 날 조율이 풀린 할아버지의 기타를 들고 집을 나선 그는 연인이 될 시현을 만나는데, 다만 이것은 모두 지나간 이야기다. 현수와 시현의 관계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 이미 끝난 상태로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새 삶을 준비하기 위해 짐을 정리하던 그들은 한동안 의식하지 않았던 이별의 잔여를, 서로가 서로를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을 돌려주고 또 돌려받기 위해 재회한다. 그 시간 동안 두 인물은 제게 필요한 것을 다시금 상대에게서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언젠가 한 몸 같던 서로를 이미 떼어낸 그들의 재결합은 이뤄지지 않는다. 줄이 끊어져도 기타는 기타고 잉크가 떨어져도 만년필은 만년필이듯, 그들은 오직 자신다운 모습을 되새기며 각자의 길을 떠날 뿐이다. 필요한 것을 오직 필요한 만큼만 담담히 주고받고 돌아서는 뒷모습이 마음을 깊이 울렸다. <선을 갈다>가 내게 남긴 것이다. (함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