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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투 로컬 2
알다시피
R-P, As you know
장가영┃극영화┃컬러┃27분┃2025┃대한민국┃15+

정신이 변기에 빠진 것 같아. 물을 내려버렸어. 출근 준비를 하던 송주에게 5년 전 해체한 밴드의 멤버였던 이경의 전화가 걸려온다. 송주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야 한다. 전화를 끊고 나서, 아무것도 넣지 않은 자신의 변기도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깨끗해지려면 또 어떤 것이 더러워져야 한다. 식탁을 걸레로 닦으면, 식탁이 깨끗해지는 대신 걸레가 더러워진다. 걸레의 존재는 식탁의 청결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우리는 늘 걸레를 보이지 않는 구석 저편으로 치워둔다. 우리 사회에도 '식탁'과 '걸레'가 존재한다. 영화를 통해 이윤 추구의 관점에서 무언가를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으로 나누는 일,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러운 것'으로 여겨져 외면당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안락함과 우아함을 지탱하는 데 필연적으로 생산되는 오물을, 단순히 변기에 넣고 내림으로써 모르는 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발전과 성공이라는 미명 하에 버려온 것들과 지금도 버리고 있는 것들을 직시하자.
겨울날, 송주는 길에 오래된 전자피아노를 내다 버린다. 그곳에는 이미 철 지난 선풍기와 캐리어 등이 폐기물 딱지가 붙은 채 방치되어 있다. 순간 송주는 잠시 그 ‘쓰레기’들을 바라본다. 그에게는 한 때 이경이라는 언니와 함께 밴드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밴드 활동은 곧 취업, 연애와 같은 구성원들의 개인 사정으로 흐지부지되었다. 그 후로 송주는 치위생사로 일하며 여느 직장인들처럼 작은 원룸에서 출퇴근을 반복하는 삶을 살고 있다. 미국에서 잠시 돌아온 이경과의 예정된 만남 정도가 요사이 송주의 일상에서 작은 이벤트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경의 전화 한 통에 미뤄지게 된다. “정신을 변기에 빠트린 것 같아. 물을 내려버렸어.” 만남이 유예된 사이, 길에 내다 버린 전자피아노가 사라지고 송주는 못내 당황한다. 이경과 전자피아노의 행방이 묘연한 와중에 송주의 곁에 자꾸만 피아노 소리가 맴돌며 들려온다. 폐기물 딱지가 붙은 전자피아노는 그전과 과연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영화 <알다시피>에는 한 시절 불가피하게 어떠한 선택과 결과를 치르고 나서도, 영원히 답을 내릴 수 없는 가정문을 세워보며 미련과 상실에 헤매고 있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작지만 유효한 위로가 담겨 있다. (이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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