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마치 산 아래 불빛처럼 주위의 어둠을 밝힌다. 다시 말해 예술은 찬란한 빛으로, 나머지 인생은 어둠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내 생각은 물론 다르다. 예술의 빛이 닿지 않을 만큼 어두운 인생의 단면이 있다면 나는 차라리 그 어둠 속에 머물고 싶다.” 프로세스로서의 작곡에 대한 강연에서 발췌한 존 케이지의 생각이다. 어둠 곁의 생각. 어둠이 그려낼 수 없는 것을 떠올려본다. 전당포는 물건을 맡기고 돈을 빌리는 곳이다. 무언갈 맡기고 무언갈 임시로 얻는 거래 행위의 장소. 이 거래는 어둠 속에서 이루어진다. 영화는 빛을 어딘가에 맡겨두고 어둠을 잠시 빌려올 때 비로소 무언갈 그려낼 수 있다. 거래는 전당포로 암시되는 물건과 돈, 그 사이에 있지 않다. 좁혀진 눈동자와 실내 전경을 오가는 숏의 거래이자 교환을 통해 어둠 사이로 흥미진진함이 드러난다. 컴컴하지 않은 그라운드를 비추는 게임 숏. 플레이어의 모습이 아니라 그 그림자에 눈이 가는 것은 본능적인 지향이다. 어둠은 무언가를 키워낸다. 그것이 서스펜스라 불리는 서사의 순간은 아닐 것이다. 어떤 이미지라고 부를 수 없는 것. 이미지 없는 이미지의 상태이다. 어둠은 어둠이라는 이미지를 불러온다. 인물을 따라 카메라가 빛으로 옮겨갈 때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그 심적 부피를 늘려 가지만, 그것이 무언가를 볼 수 있게 만든다는 해소의 감각을 가져오진 않는다. 어둠이 거두어들이지 않는 감각은 서사에서 이탈한 장면의 속도와 점점 밀착된다. 그라운드를 비추는 게임의 숏 속에서 들려오는 군중의 환호가 그림자를 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둠을 찬란한 빛으로 밝히면 다시 빛은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기에 차라리 어둠 속에 머물고 싶다던 존 케이지의 생각을 다시 읽어본다.
오민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