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진 창문과 불면의 밤을 서울에 두고 제민은 부산으로 떠난다. 빼곡하게 부산의 장소를 써둔 노트를 건네는 호철. 제민의 친구 태호에게 부탁을 받은 호철의 뭉툭한 호의. 제민은 호철과 밥을 먹고 식당 앞을 서성이다 호철의 지인 준석을 만난다. 세 사람의 동행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제민을 제외하곤 최소한의 배경을 파악할 수 없는 인물들의 동행은 서로를 전혀 모른다는 점 때문에, 예측할 수 없는 대화의 양상처럼 다소 흥미롭다. 기대하지 않았던 여행의 들뜸처럼. 뒤이어 또 다른 장의 인물들은 여행의 필요를 대화의 중심으로 옮기고 생소하게 느껴질 대화를 주고 받는다. 촬영 현장에서 전개되는 이 장면에서 호철, 제민, 준석이 합석한 차량을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분리된 두 장소의 이야기와 시간은 무리 없이 연결되고 이어질 상황의 충분한 근거를 마련한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사건을 받아들이는 것이 여행이라면 영화는 그것을 담아내는 흥미로운 방법이 될 수 있다. 합리적인 전개와 각본은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상투로 가득한 서사를 받아들여야 하는, 영문 없는 사건으로서의 영화를 성립시키는 조건이 된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떠나온 제민은 그렇게 오늘 처음 만난 이들과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투의 세계를 만드는 영화의 시간으로 흘러든다. 촬영 장비 사이에서 인물들은 떠나지 못한 채 발이 묶이고, 목적 없는 시간으로 인해 여행의 도착지는 잊힌다. 제민은 어디로 가고 싶었을까. 삶에 찌든 제민의 마음을 꺼내게 만드는 실없는 대화는 경직되었던 인물의 표정과 몸짓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다시 카메라 앞의 상황은 전개되고 풀어졌던 모습들은 경직된다. 영화라는 임시적 풍경은 여행보다는 관찰과 답사를 떠올리게 하며 자유로움을 축소시킨다. 제민은 그 모든 것들을 지켜보며 영화 만들기에 녹아든다.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뜬금없는 행동을 바라보지만 뒷걸음치진 않는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뜨거운 숨을 내뱉는 제민의 모습에서 영화의 도입, 얼룩진 창문을 떠올린다. 호하고 소리내어 창문의 얼룩에 숨을 불어보는 모습을 떠올린다. 지워지지 않을 것 같던 창문의 얼룩도 쉽게 지워질 것만 같다. 곤히 잠든 제민의 꿈에 그런 장면이 그려지길 바라본다.
오민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