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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포커스 4
한국인을 관두는 법
How to Stop Being Korean
안건형┃다큐멘터리┃흑백┃113분┃2018┃대한민국┃15+

화면에는 태극기 집회와 그런 태극기가 있게끔 하는 한국의 위인 동상들이 보인다. 그 위로 위원장이라는 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유령방송 <출세의 소리>를 낭독하는 '기회주의 반도 총연합 중앙위'의 위원장이다. 그들은 3·1운동 이후 100년간의 한국 기회주의의 역사를 정리하여 들려준다. 그런데 이 기회주의의 역사란 위원장이었던 이들과 위원장을 지망하는 이들의 초상이고 한국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원인이기도 하다. 기회주의의 역사야말로 한국의 역사인 것이다.
<한국인을 관두는 법>은 ‘태극기 집회’라는 한국식 민족주의 현상을 다루는데, 그 역사적 연원을 따지면서 동시대 한국인의 삶을 묘사한다. 이는 특정 집단이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면, 예외적이라고 간주되는 그 집단 내의 사건은 사실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대표적인 것이고, 따라서 그 집단 전체의 지표가 된다는 믿음에 기인한다.
아카이브 푸티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출세의 소리>라는 방송의 내용을 낭독하는 이들의 목소리와 광화문에 펼쳐진 태극기 집회의 이미지가 겹치며 영화가 시작된다. 방송의 주체는 '기회주의 반도 총연합 중앙위'의 위원장들인데, 이들은 지난 한반도의 근현대사를 복기하며 기회주의에 대한 찬탄을 이어간다. “양심이란 건 구시대의 가치이며 사실 여부는 중요치 않고, 죄란 실제의 행위가 아니라 다수의 합의로 결정된다”라는 등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라면 당연히 코웃음 칠만한 내용들이다. 이들의 주장과 어투는 일종의 블랙 코미디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블랙 코미디는 우리가 어렴풋이 아는 과거의 현실로 재편된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황제의 신민임을 열렬히 피력하던 조선인들의 거나한 듯한 문장들이 한반도 근현대사의 시작을 되새기게 만들고, 이후 이승만과 박정희를 우상화했던 국민과 언론의 흔적은 불과 몇십여 년 전의 기록으로써 지금의 관객을 부끄럽게 몰아간다. 그러다가 문득, 다시 재생되는 작금 서울의 이미지는 과거 기회주의자들이 보였던 행태가 지금도 유지 및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듯 페이크 다큐멘터리와 현실의 영역을 흩뜨린다. (이우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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