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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신나리 추모의 밤

영화감독 신나리

'영화감독 신나리 추모의 밤'은 그가 남긴 작품 가운데 인간적인 면모가 짙게 벤 <천국 장의사>, <달과 포크>, <미조> 세 편의 단편을 통해 그를 기억하려 한다. 프레임 안팎으로 포착되는 특유의 정서, 그리고 인물들에 깃든 어떤 삶들의 자취로부터, 우리는 타자의 시간에 감응하는 신나리의 감각을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일시 | 2025.04.19. (토) 19:00

장소 |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참석 김영조(영화감독) 이진승(PD) 김동백(PD)
진행 김이석(동의대학교 영화·트랜스미디어연구소장)
진행┃김이석

안녕하세요, 상영 후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 진행을 맡은 동의대학교 김이석이라고 합니다. 같이 이야기 나눠주실 세 분 모셨습니다. 먼저 김영조 감독님이십니다. 옆에 이진승 PD님이시고요. 망고미디어 대표 김동백 PD님이십니다. 신나리 감독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 듣고 부산에 있는 영화인들이 빈소를 찾지 못한 사람들도 있고 다녀왔더라도 영화를 매개로 이야기하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서 행사를 고민을 했고요. 부산독립영화협회와 영화의전당, 그리고 제가 있는 동의대학교하고 같이 의논을 해서 이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영화의전당은 신나리 감독님이 영화를 처음 배우셨고 감독님이 가장 사랑했던 공간이기도 해서 행사의 장소는 여기가 마땅하다는 생각이었고요. 모이는 사람들과 무엇을 하면 좋을까 생각했을 때도 역시 감독님의 영화를 함께 보는 것이 제일 좋겠다. 그래서 <천국장의사>(2015), <달과 포크>(2020), <미조>(2024) 세 편의 영화 상영을 했고요. 모이신 분들이 감독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을 한번 나누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상영 후 토크까지 이어지게 됐습니다. 앞에 앉아 계신 분들이 각별한 인연들을 갖고 계셔서 감독님에 대한 이야기 하겠지만 오신 분들 다들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얘기하는 틈틈이 객석으로 마이크를 전해드리고 저희들이나 여기 계신 분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나리 감독님께 하고 싶었던 말씀들을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왜 이 행사를 동의대학교에서 같이 준비했는가 하면, 아는 분도 계시겠지만 감독님이 마지막에 저희 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셨고, 제가 지도교수로 있었기 때문에 함께 이 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옆에 계신 김영조 감독님은 신나리 감독님의 멘토라고 할 수 있고 신나리 감독님이 영화계로 처음 들어오는 데 크게 도움을 주셨고 끝까지 함께 하셨던 분이고 이진승 PD님은 오늘 상영한 영화에도 보시면 매 작품의 크레딧마다 성명이 있으시죠. 투병 중에도 가까이에서 도움을 주셨던 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김동백 PD님은 신나리 감독님의 작품 다수를 제작해 주신 분이셔서 하실 말씀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제일 먼저 김영조 감독님께 말씀을 하실 시간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토크┃김영조

아까 영화 보면서도 함께 했던 흔적들이 많이생각이 났어요. 어떤 영화를 상영할 것인가 생각했을 때 처음에 거론은 안 됐었는데, 가만 보니까 <천국 장의사>가 신 감독의 처음이었거든요. <미조>는 신 감독의 마지막 영화였고요. 그래서 두 작품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천국 장의사> 경우에 제가 영화의전당에서 워크숍 수업을 했었거든요. 수강생들이 질문도 별로 없고 지루해 하는 가운데 눈이 반짝거리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 분이 신나리 감독이셨고요. 영화를 만들어야 되는 워크숍이었기 때문에 영화를 소재를 갖고 와라, 얘기를 했죠. 이 친구가 갖고 왔던 것이 <천국 장의사>인데 지금 보니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와서-왜 하필 첫 영화로 장의사를 했을까 이런 생각하니까- 마음이 힘들었어요. 영화 첫 장면이 멀리서 초상화 그리는 사람을 롱테이크로 보여주잖아요. 처음 그 장면을 찍어 온 거예요. 그래서 제가 너무나 행복했어요. 감성이 나하고 비슷한데? 보통은 그렇게 오랫동안 찍지 않거나 카메라가 기다리지 않고 따라갈 법도 한데 말이죠. 그 후 제가 관심 있게 봤었어요. 그리고 영화 진행이 계속 겉돌고 있었어요. 섭외를 하면 대상자에게 어떤 사연들이 있고 왜 장의사를 했고… 그분의 시간과 역사를 들어야 하는데 안 되는 거예요. 말로는 다 해주시는데 카메라만 대면 안 하는 거예요. 영화에서도 그게 보였잖아요. 신나리 감독님이 영화를 완성 못 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당신은 벌써 영화 완성했다고, 이게 다큐멘터리라고 얘기를 했거든요. 그리고 이 정도 해왔으면 당신은 영화 속에 하나의 캐릭터가 돼 버렸다고도 말해줬어요. 그래서 (신나리 감독이) 그냥 카메라 속에 들어가지요. 밥 먹을 때 카메라를 들고 뒤에서 제가 촬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친구는 궁금해 했어요. 다큐멘터리가 아직 완성이 안 됐는데 저는 왜 완성됐다고 하는지? 그렇게 궁금해하는 이 친구가 좋았고, 그때 작업하고 있던 장편 다큐멘터리가 있어서 스태프를 제안 했는데 그게 인연이 되었어요. 그후로 저의 모든 작품들에 조연출을 맡아 주셨고요. 또 신 감독이 작업했던 몇몇 작품을 제가 촬영을 해서 같이 컬래버레이션을 했던 시간들이 있습니다. <미조> 경우에 신 감독이 사수였던 저의 손길 없이, 독립적으로 자기 크루들과 영화 만들었고요. 이 영화에서 제가 꼭 봐야 될 장면이 있다는 거예요. 그 장면을 발견했죠. 제 영화 <태백, 잉걸의 땅>(2008)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한 노인을 뒤에서 따라가는 장면이 있어요. 그걸 오마주 한 것 같아요. 어떤 아저씨를 쭉 따라가는 장면, 이 친구가 나한테 선물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행┃김이석

오늘 상영한 3편의 영화, 김영조 감독님께서 선정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의미도 설명해 주셨고요. 이진승 PD님은 나리 감독님과 어떻게 인연을 처음 맺으셨고 어떻게 점점 가까워졌고 그 세계 속에 들어가게 되셨는지요?

토크┃이진승

영화의전당의 다큐멘터리 워크숍을 통해서 처음 만났는데, 당시에는 따로 대화한 적도 없고 그냥 함께 수강생으로 참여를 했습니다. 그때 지도 감독님이 김영조 감독님이셨고 나리 감독님은 다른 팀에서 작업을 하고 계셨고요. 저는 나리 감독님이 눈빛이나 질문하시는 것도 열정적이셔 가지고 ‘와, 저런 분도 있구나. 우리도 열심히 해야겠다.’ 그렇게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워크숍이 끝나고 나리 감독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잘 지내고 있는지, 시간 되면 차 한잔 하면서 이야기 나누고 싶다 해서, 처음 개인적으로 뵈었는데요. 그때 감독님은 작업 중인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그 작품이 <셉템버>(2017)였습니다. 작품에 여성 출연진의 야외 노출 장면이 있는데 저에게 피드백을 받아보고 싶다고 영상을 보여주시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겨우 두 번째 만남에서 보여주셨거든요. 의견을 물으셨는데 소감을 말씀드렸더니 나리 감독님께서 특유의 열정적인 눈이 빛이 나시면서 저랑 작업을 다음에 꼭 같이 해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처음에는 자막하고 번역하고 이런 작업들을 같이 해 나가면서 대화를 나눠보면 어떻겠냐고 하셨죠. 저도 그렇게 참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요. 제가 워크숍에 참여는 했지만 현장에서 작업하는 일이 감독님하고 호흡 맞췄을 때 힘든 부분도 있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저는 다른 일도 하고 있는 중이니까 그래도 괜찮겠느냐고 여쭤봤어요. 나리 감독님께서 그런 부분은 맞춰가면 되고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하자고 하셔서 저도 감사히 열심히 하겠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천국 장의사>의 후반 작업 자막을 시작했는데, 자막이 이미 입혀진 상태로 수정이 불가능한 것들이 많아가지고 사실 처음에는 좀 많이 힘들었습니다.

호흡을 계속 맞추면서 나리 감독님께서 저에게 많이 배려를 해 주셨어요. 그때는 차도 없어서 나리 감독님께서 그냥 말없이 먼저 집 앞에서 오셨어요. 연락을 나누면 바로 집 앞에 있다고 말씀 하시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제가 가면 되는데… 저하고 의논을 하거나 촬영을 갈 때는 시간만 되면 무조건 나리 감독님께서 촬영하기 위해서 필요한 준비를 먼저 다 해두셨고 제가 언제 어디에서 출발하겠습니다, 하고 알려드리면 “데리러 갈게”가 아니고 아예 그 시간에 무조건 오셔 가지고, 오히려 출연진 섭외를 받은 사람처럼 대우를 해주시면서 그렇게 촬영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인연이 쭉 이어져 온 것이죠. 다른 감독님과 이렇게 작업을 하지는 않았거든요. 지금은 나리 감독님의 <도반>이라는 작업 계속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진행┃김이석

김동백 감독님도 영화감독 신나리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던 순간에 중요한 역할을 맡아주신 것 같은데요.

토크┃김동백

인연은 다른 분들과 비슷합니다. 영화의전당에서 저도 수업했고 그때 알게 됐는데 어느 날 김영조 감독님이 조연출 한 명을 새롭게 뽑았다고 했어요. 다른 친구들은 하루 만에 도망갔는데 이 친구는 끝까지 잘 버틴다고 소개를 받게 되었어요. 저도 김영조 감독님의 PD 역할을 하면서 그때부터 인연이 되어-그 뒤에 신나리 감독님의 장편 데뷔작이죠. <녹>(2018) 그리고 <뼈>(2022), 두 작품이 일본 로케이션으로 진행이 됐는데- 같이 했고요. 그리고 원자력발전소, 서생 쪽 배경으로 정철교 작가님 다루는 <불타는 초상>(2021), 세 편을 함께 했어요. 영화 관련 이야기를 앞서 많이 했는데 너무 처지는 것 같아서 말씀을 드려보면, 신나리 감독님이 참 호기심도 많고 처음 봤을 때부터 나이에 비해서 안 해본 경험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제 기억에 영화를 김영조 감독님, 신나리 감독, 저 이렇게 셋이 같이 하는 몇 년 동안은 제가 PD로 가든, 제작이 되든, 신나리 감독의 식생활 개선 프로젝트라고 할까요? 못 먹던 음식을 먹게 만들고 그랬어요. 처음에 돼지국밥도 못 먹어서 김영조 감독이 권하면서 먹을 수 있게 됐어요. 카레도 못 먹는다고 그랬거든요. 일본 촬영 갔을 때는 입맛에 안 맞아서 식사를 못 했었어요. 본인은 편의점에 가서 식사하고 오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편의점에 가서 저희가 먹은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이 사 드시고 그렇게 했던 기억도 나네요. 사람에 대한 호기심도 많았죠. 아까 배려 말씀하시는데 무한한 배려가 있어요, 그렇게까지 하지 말라고 잔소리할 정도의 무한한 배려. 그리고 궁금한 거 못 참아 가지고 사람들한테 막 물어보고 그런 행동들이 참 기억에 많이 남아요. 활동했던 기간에 비해서 보면 작품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 호기심들을 풀기 위해서 여러 작품을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저는 <미조>를 오늘 처음 봤는데 이렇게 좋은 스태프들과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하고 좋은 작업을 한 것 같아서 상당히 기분이 좋습니다.

진행┃김이석

혹시 객석에서 신나리 감독에 대한 기억 같은 것들을 말씀하고 싶은 분 계시면 손 들어주세요. 마이크 전해드리겠습니다. 열정 넘치고 호기심 많고 저도 만나 보았을 때 이분이 악착 같다는 생각도 했거든요. 영화에 대한 열정도 넘쳤고 마지막 작품 보면서 투병하는 와중에 또 영화를 찍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이진승 PD님은 <미조> 때 같이 계셨던 건가요? 건강 때문에 염려도 됐을 텐데 어떠셨어요?

토크┃이진승

<미조> 촬영 전에 연락이 오셔가지고요. 섬에서 한 달 정도 영화 촬영 프로젝트가 있는데 몸도 회복되고 있는 와중이라, 기분 전환도 할 겸 공기 맑은 곳에서 편한 마음으로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예전부터 에너지를 많이 쓰는 작품을 주로 하시다 보니까 이번 작품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놀러 간다 생각하고 편하게 하려고 한다고요. 처음에 제가 걱정을 엄청 해 가지고 병문안 핑계로 요양원에 찾아뵈러 많이 갔었거든요. 몸 상태를 생각했을 때 섬에 가는 것이 많이 우려가 됐는데요. 직감적으로 제가 안 된다고 안 간다고 해도, 다른 스태프 꾸려가지고 가시거나 혼자라도 가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적이 몇 번 있었거든요. 저도 오랜만에 같이 하면 좋겠다고 말씀 드려서 참여를 하게 됐고요. 막상 해보니까 원래 당일치기로 갔다가 다시 부산으로 와서 좀 쉬었다가 1주일, 2주일 뒤에 다시 가서 인터뷰하고 또 돌아와서 추가 촬영이 있으면 한 일주일 정도 있다가 다시 와서 마무리. 이렇게 3회차로 촬영을 하려고 했는데요. 가자마자 운 좋게도 바로 섭외가 돼가지고 감독님께서 지금 이대로 끝을 내자고 해서 2박 3일 쉬지 않고 쭉 촬영을 이어가게 됐거든요. 나리 감독님은 나리 감독님이시구나. 변하지 않는다 생각했죠. 스태프 분들도 일정을 거기에 맞춰 조정했죠. 다음 날 고양이 밥 줘야 되는 분은 고양이 밥 주고 다시 와가지고 촬영하고. 사실 그전부터 예상은 했어요.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 안 된다, 다시 돌아갑시다, 해서 돌아가게 되더라도 감독님은 어떻게 해서든 돌아가지 않고 촬영을 끝내실 거라서 그러면은 지금 다 같이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죠. 마침 일정상 모두가 다 할 수 있게 돼 가지고 작품을 끝내게 됐습니다.

진행┃김이석

감독님이 뜻을 잘 안 꺾는 분이시기도 하잖아요.

토크┃김영조

신 감독이 저한테 항상 스승님이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부담스러웠어요. 너무 깍듯한 거예요. 누가 보면 내가 무슨 갑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오해한다고 좀 편하게 대하라고 그랬죠. 그러면서도 그 열정 때문에 이 친구가 나를 좀 벗어나야겠다, 독립을 해야 된다고도 했었죠. 한번은 제가 프랑스 영화를 보여줬어요. 자막이 없어서 제가 짧은 지식으로 해석을 해줘요. 근데 부족하죠. 이걸 진짜 프랑스인에게 부탁을 해가지고 한글 자막을 다 만들어서 저한테 선물까지 하고 그렇게 열정을 보였어요.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돼요. 또 즐겁게 작업하다가 또 엄청나게 질문들을 하고 그래요. 자기 영화 할 수 있게 독립하라고 한 말에 오해가 생겨가지고 벌써 하산시키려고 한다고 섭섭했나봐요. 그러면서 오기로 만들었던 작품이 <달과 포크>였어요. 전 만드는 걸 몰랐어요. 그걸로 전주국제 영화제에 갔죠. 영화 보고 내가 너무 행복한 거예요. 너무 좋다! 이거다! 이게 너의 영화다! 막 이런 얘기를 했었거든요.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1차 항암을 잘 견디고 퇴원 하시고 난 뒤예요. 제가 어느 영화제에서 이런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있으니까 주변에 감독들한테 좀 알려주라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신 감독님이 워낙 발이 넓으셔서 많은 감독들이랑 알고 있고, 소식 전하는 일도 좋아했어서, 생각 없이 “신 감독, 이 소식도 사람들한테 알려주세요.” 했는데 말이 없더라고요. 자기가 하면 안 되겠냐고 하는 거예요. 무슨 소리냐? 당신은 이제 몸을 회복해야 되는데 안 된다고 했는데 또 말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이렇게 스트레스 받는 건 건강에 더 안 좋을 것 같다. 영화 못 만들 수 있다는 스트레스가 굉장히 컸거든요. 그러면 차라리 톤을 조절하면서 만드실래요? 한번 도전해 보세요, 했는데 제작지원에 선정이 된 거예요.

진행┃김이석

제가 신나리 감독을 처음 알게 된 건 김영조 감독 통해서였어요. 영화의전당 수업을 듣던 사람인데 영화를 한 편 만들었다. 영화 굉장히 괜찮다. 근데 좀 고쳤으면 좋겠는데, 절대 안 듣는다. 같이 한번 봐줬으면 좋겠다고요. 저희 학교에 극장이 하나 있어요. 거기서 저하고 차민철 교수님하고-그때 저는 신나리 감독이 누군지 몰랐습니다- 영화를 봤는데, 영화가 괜찮은데 파트1, 파트2처럼 보이긴 하더라고요. 의견 드렸더니 김영조 감독님이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었나봐요. 신나리 감독은 다른 사람들이 비슷한 의견을 얘기 하니까 받아들인 것 같고, 그게 <셉템버>였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토크┃김영조

<셉템버>는 누드 사진을 찍는 엄마와 딸-딸이 사진 작가예요- 걸 해변에서 하겠다는 거예요. 위험하기도 하고 섭외가 관건인데요. 영화를 만들고난 다음에 많은 친구들한테 보여줘요. 또 귀가 좀 얇아요. 그래서 막 혼란스러워 하기도 했어요. 영화를 쭉 작업을 같이 해보니 신 감독은 일단 사람에 대한 관심이 너무 많으세요 영화에도 등장을 하지만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고, 영화 속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사람에게 너무너무 잘해요. 음식도 엄청 사 가지고 가고요. 그러니까 <천국 장의사> 보신 거처럼, 그 집에서 미안해 가지고 마지 못해 밥상을 차려 같이 식사를 했던 거였고요. <셉탬버>도 그렇게 정성으로 부탁하며 끝까지 그걸 하겠다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사람한테 투자한 시간들이 위험부담도 있는데, 그 사람한테는 굉장히 소중했던 시간 같아요. 그래서 만들어진 영화가 좋은 작품이 되고 해외 영화제도 갔고 이랬던 것 같아요.

진행┃김이석

열정이 넘쳐서 그게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염도 잘 되죠. 저희 대학원에 늦게 진학을 해서 공부를 하는데 같이 수업 듣던 동기생들이 덩달아 그 해에 굉장히 열심히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혹시 나에게 전염시켰던 신나리에 대한 기억을 얘기하시고 싶은 분이 계시나요?

객석┃참석자1

말씀하셨던 내용들이 다 신나리 감독님이 제자인 입장에서 하셨던 말씀이라면, 저는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신나리 감독님의 영화수업을 수강을 해서 신나리 감독님을 선생님으로 만나게 된 입장입니다. 1년 동안 카메라를 사용하는 방법이나 영화 촬영장, 스튜디오 같은 데도 가보기도 하고 감독님한테 많이 배웠습니다. 고등학생 때 정말 영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열정적으로 가르쳐 주시면서 함께 진로에 대한 고민도 많이 잡아주셨던 기억이 있어요. 20살에 대학교에 입학하고 또 한 번 저한테 연락이 오셔서, 본인이 하는 작업들이 있는데 일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말씀을 해 주셔서 감사하게도 저는 20살에 능력도 없고 대학 신입생일 뿐인데 일할 수 있게 해주셨어요. <뼈>의 스크립트 작업을 제가 돕기도 하고 신나리 감독님 일하고 계신 영상산업센터 사무실을 찾아가서 일도 하고 했었습니다. 군대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오랫동안 함께 일하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군대에서 마지막으로 신나리 감독님이랑 연락했을 때, 감독님께서 전역하고 밥이라도 한 끼 먹자고 하셨는데 그러지 못한 게 마음속에 많이 남습니다. 감독님께 정말 많이 배웠고 이 경험들로 지금 영화인으로서의 꿈을 조금씩 더 키워 나가고 있습니다.

객석┃참석자2

저도 영화의전당에서 진행하는 각종 워크샵을 같이 들으면서 신나리 감독과 시간을 꽤 많이 보냈었네요. 신나리 감독의 열정, 집요함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제가 몇 년 동안 영화의 전당 워크숍 작품들의 스태프를 했는데요. 어느 해에 감독님이 제게 “이제 연출을 해야 됩니다.” 하시고, 저는 “아직 아닙니다.”, 감독님은 “해야 됩니다.” 그게 시작되고부터 사람을 못살게 굴더라고요. 매일 전화하고 카톡 보내고 찾아오고 그래주셔서, 해도 될까? 힘을 얻고 시작을 했어요. 그래서 저도 신나리 감독 덕택에 작품 한 편 연출을 할 수 있었는데요. <천국 장의사>는 오늘 처음 봤어요. 아까 김동백 PD님도 말씀 하셨다시피 초딩 입맛, 차려준 밥상을 깨작거리면서 먹잖아요. 어른의 밥상이 신나리 감독 입맛엔 안 맞을 텐데 생각이 들어서 그 장면에서 저 혼자서 막 웃었거든요. 처음 만났을 때 신나리 감독이 맨날 완전히 아기들 먹는 것만 먹는 거예요. 전 그것도 모르고 혼자 사니까 명절 음식도 못 먹을 거라서 나물이랑 해서 갖다 주고 그랬는데 얼마나 싫었겠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입맛이 바뀌는 걸 저도 옆에서 봤는데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천국 장의사>에서 인터뷰 대상자 분을 설득하는 진심을 담은 편지 내용이 눈에 들어왔어요. 9살 아이가 느끼는 죽음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는데, 이게 시작이었구나 생각하게 된 게요, 제가 이번에 신나리 감독 빈소에 가서 가족분들이랑 얘기를 나누다가 투병 기간 동안에 적은 글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다큐 촬영도 했었고요. 가족들께서 다큐가 완성되고 나면 책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얘기를 하셨는데 우선은 가족들이 그 글을 나눠서 읽고 싶다고 책을 만드는 작업을 출판사에 의뢰를 했대요. 꽤 비용이 많이 들더래요. 제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 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해서 신나리 감독 글을 정리해 얼마 전 가족분들에게 책으로 전달드렸거든요. 근데 그 책 내용에 보면 9살 아이의 죽음에 대한 얘기가 여러 번 언급이 되는데 그게 감독님의 얘기더라고요. 그러면서 그 어린 9살부터 눌러왔던 죽음의 그 무거움이 신나리 감독의 영화 작업을 통해서 얼마나 그 무게가 덜어졌는가를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솔직히 신나리 감독이 투병을 하는 동안에는 영화를 안 했으면 이 친구가 안 아플 수 있지 않았을까? 무리해서 대학원을 안 갔으면, 또 프랑스 유학을 꿈꾸지 않았다면 덜 무리하지 않았을까? 그럼 안 아플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 했었는데 신나리 감독의 글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신나리 감독을 자기로서 살게 했고 또 아플 때 내가 나아야 되겠다는 열망을 갖게 한 건 영화 덕택이었어요. 그래서 살아야 되겠다는 희망을 가졌다는 걸 글을 통해서 알게 돼서 영화가 신나리를 살게 한 힘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객석┃참석자3

신나리 감독님하고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하나가 있어요. 일면식도 없던 관계였는데 제 첫 영화가 개봉하고 극장에서 일주일 만에 내려가 실의에 젖어 있었던 시기였어요. 제 번호를 어떻게 아셨는지 밤 12시에 전화가 오셨어요. 모르는 번호라서 안 받을까 하다가 몇 번인가 전화 왔길래 받았는데 밤 12시에, “영화 잘 봤는데, 제가 신나리라고 합니다. 제가 블로그에 리뷰를 좀 써도 되겠습니까?” 하셨어요. 그때는 영화를 하기 전이셨는데 영화 감독이 될 만한 어떤 캐릭터라는 생각과 동시에, 보통 사람들은 블로그에 글을 쓰겠다라는 말을 하지 않고 쓰거든요. 근데 이 분은 쓰겠다고 얘기를 하시는 걸 봤을 때는 배려심도 많으신 분이구나. 여러 가지 생각을 했네요. 그러고 나서 저에게 블로그에 글을 썼다고 장문의 문자를 보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들어가서 찾아봤는데요. 그때는 영화 감독이 되시기 전이었는데 영화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 제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 메시지나 이런 것들을 뼛속 깊이 분석 하신 걸 봤죠. 영화 감독을 뒤늦게 시작하신 거는 그 이후에 알았는데요. 그때도 충분히 좋은 감독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2018년 초였어요.

객석┃참석자4

우연히 신문을 폈는데 이제 젊은 감독님이 소천하셨단 얘기를 보고 오늘 너무 바쁜데 그냥 오게 됐습니다. 다른 것보다도 신나리 감독님이 자신의 스태프들을 꾸려서 <달과 포크> 했을 적에 느낌이 어땠는지 김영조 감독님의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토크┃김영조

신 감독한테 독립하라고 한 이유는, 제 얘기가 정답은 아니잖아요. 근데 제가 얘기했던 거를 학습을 하듯이 하고 있어서, 영화는 그런 게 아니다. 당신의 문법도 있는 것이고 나의 문법도 있는 것이다. 다만 참고만 하라고 했어요. 그래도 스승님에 대한 컨셉이 신나리 감독에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제가 얘기했던 거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제자로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답답해서 그러면 안 된다고 얘기를 했고, 그래서 당신의 크루를 먼저 만들어 보라고 했었어요. 근데 <달과 포크>도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찍어왔던 것이었어요. 1년 넘게, 오랫동안 조금씩 조금씩 찍어왔던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이미 그걸 준비하고 있었어요. 작품이 완성됐을 때 제가 신 감독한테 그랬거든요. 내 작품보다 또 더 훌륭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당신의 영화다. 당신은 이제 이런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기분이 좋았어요. 그다음에 제가 본격적으로 당신 영화 촬영을 해주겠다. 내 스태프로 있지말고 당신의 영화를 만들어라. 그래서 이제 장편으로도 가고, 그 시점에 아마 장편을 좀 같이 하자고 의뢰도 했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토크┃김동백

시기는 그게 아니고, 장편을 하고 나서예요. 신 감독도 사실 감독인데-촬영감독님도 스승이야. 제작 피디도 뭐 스승은 아니지만 그 급이야, 저희가 하는 말들이 잔소리인데- 가르치기도 하고, 조언이지만 빨리빨리 하라고 하는데, 스트레스 안 받았겠습니까? 저는 제작자로서 한 작품 갖고 2년, 3년 끄니까 빨리 완성해야 된다고 말했는데요. 두 번째 작품 하는 동안에 혼자 <달과 포크>를 찍고 있었던 거죠. 김영조 감독 뜻은 신 감독이-김영조 감독과 저보다는- 말하자면 대장이 되어서 크루를 모아가지고 신 감독에게 편한 사람들하고 팀을 이루어서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거였죠. 김영조 감독 말이 정답은 아니니까 신나리 감독 본인 스타일대로 갔으면 좋겠다. 그런 뜻이었는데 신 감독은 좀 마음이 상했었죠. 자기를 버리려고 하느냐고 해가지고 그게 아니라고 설득하는 과정도 있었는데요. <달과 포크>를 만들면서 전주국제영화제 갔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기도 했던 그런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진행┃김이석

가까이서 보셨던 이진승 PD님은 어떠셨어요?

토크┃이진승

좀 곤란하기도 하네요. 말씀처럼 <달과 포크>를 감독님이 작업을 하기 전 다른 작품을 하고 계셨는데요. 그때 제작자님이 다른 작품에는 호기심을 자제 하고 지금은 거기에만 전념하라고도 말씀 하셨는데, 나리 감독님께서는 지금 타이밍을 놓치면 아예 <달과 포크>-그 때는 제목이 정해지기 전인데-는 작업 못할 수도 있고, 꼭 진지하게는 제작에 안 들어가더라도, 대상자를 만나뵙고 이야기 나누어야 지금 하던 작업 끝나면 본격적으로 새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셨어요. 듣고 저도 어쩌나 하던 차에, 갑자기 나들이 한번 가자고 하셔가지고 저도 좋다고 했죠. 또 여느 때처럼 먼저 오셔가지고 저 픽업을 하시고-어디로 가는지도 그때 몰랐거든요- 가면서 다 말씀하시더라고요. <달과 포크>의 주인공인 박민경 섬유작가님을 이번에 기회가 돼서 뵙기로 했다고요. 근데 알고 보니까 약속을 정확하게 잡은 게 아니라, “언제 한번 뵐게요.” 하고, 먼저 거길 가가지고 <천국 장의사>때처럼 기다리려고 하신 거예요. 얼떨결에 그분 만나 뵙고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그때 엄청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어요. 돌아가는 길에 제가 다음에 촬영을 하면 이런 식으로 하는 것도 좋겠다고 하면서 다양하게 생각나는 거를 좀 던졌는데요. 나리 감독님께서 프로젝트를 준비를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게 됐어요. 저는 김영조 감독님과 그런 일이 있으셨던 상황이나 본인의 크루들과 함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계신지 몰랐고요. 다른 작업을 이미 하고 계시는 중에 이 작업을 진행하는 게 괜찮냐고 걱정은 했는데요. 당분간은 알리지 말자. 나중에 들킬 거다. 그때 죄송합니다, 하자. 그러니 일단은 하자고 하셨어요. 그때부터는 저도 마음 놓고 열심히 했는데, 이런 과정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알았습니다.

진행┃김이석
그 영화가 굉장히 중요한 영화였네요.
토크┃김영조

제가 그 일이 있었을 때 진승PD 얘기도 했어요. (신 감독에게도 크루라 할 만한) 진승 PD 있잖아? 이제 같이 작업해야지!

관객┃참석자5

신나리 감독님이 처음 영화의 전당에서 극영화 워크숍 들었을 때 같이 들었던 수강생이자 동료였고요. 저도 <천국 장의사>, 신나리 감독님이 주변에 많이 좀 보여주고 피드백 받고 하셨을 때 의견 드린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에요. 귀가 얇으시기도 했지만 또 어떤 면에선 고집이 세기도 하시고 그랬는데요. 제가, “언니, 이 장면 진짜 도 완전 미쳤다(좋다).” 막 그러니까, “그거 김영조 감독님이 찍은 거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시무룩해 하기도 하고 그랬었거든요. 저는 필터링을 안 하고 피드백을 많이 해서 언니가 센 의견을 받고 싶을 때 저한테 많이 물어보셨었는데, <천국 장의사> 보고, <셉템버>도 봤어요. <달과 포크> 보고 나서, 이때까지 본 것 중에 제일 좋다고, 사실 <천국 장의사>는 그저 그랬는데 <달과 포크> 너무 좋다고 했더니 언니가 정말 기뻐하면서 이거는 김영조 감독님 도움 없이 혼자 했다고 얘기했던 게 기억이 나더라고요. 김영조 감독님을 스승님으로서 존경을 하면서도 그 그늘을 본인도 의식을 하면서 독립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던 것 같아요. 먼저 독립하라고 하셨을 땐 아마 마음의 준비가 안 돼서 서운하거나 그런 식으로 보였을 수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나눠주시는 말씀들 들으니까 신나리 감독님다운 행동들을 많이 하셨네요. 밤 12시에 전화해서 블로그 쓰겠다고 하신 거나. 저는 주로 가편집본을 많이 봤고 최종본을 가끔 보기도 했는데 영화 감독 신나리보다는 자연인 신나리와 더 친해서 극장에서 작품을 본 적이 별로 없거든요. 항상 크레딧에 고마운 분들에 제 이름을 넣어줘서 부담스럽다고 넣지 마라, 나 아무것도 안 했다. 그렇게 앙탈도 부리고 했는데 알겠다고 해놓고선 오늘 <달과 포크>를 처음 봤는데 제 이름이 후원에 들어가 있더라고요. 100원도 후원한 적이 없는데, 고마운 분들은 부담된다고 하니까 안 넣고 후원에 넣었구나 하면서 언니의 바람직한 고집 같은 걸 느낄 수 있는 자리였어요. 그리고 상영 전 인트로 영상을 보니까 마지막까지도 좋은 분들하고 계셨던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이런 자리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토크┃김영조

영화 속에 스태프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인원이 저희 영화보다 더 많아요. 조금이라도, 마음으로라도 후원을 받으셨을 거예요. 신 감독은 능히 그렇게 느꼈을 거거든요. 그러면은 다 기록을 하세요.

진행┃김이석

그러니까요. 제 이름도 있더라고요. 제가 한 게 있나 기억을 더듬어 봤는데 그거였군요.

관객┃참석자6

좀 조심스럽습니다. 감독님을 뵌 적 없이 지인의 지인으로 알고 있었고 오늘 상영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궁금해서 왔습니다. 저도 작품을 만들어내는 창작자로서 어떤 분인지 궁금해하면서 영화를 보았고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말씀해 주셔서 어떤 분인지 짐작이 됩니다. 영화도 참 잘 보았고 다른 작품들도 궁금해지는데 기회가 된다면 꼭 또 보고 싶습니다.

관객┃참석자7

저는 감독님의 열정에 전염된 대학원 동기인데요. 여기 계신 분들 다 감독님을 만나는 방법과 장소는 다르지만 비슷하게 생각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다큐멘터리 감독님을 개인적으로 알게 된 경우가 처음이었는데 처음 겪어보는 유형의 사람이였어요. 성격도 밥 먹는 성향도 안 맞아 가지고 대학원을 다니지만 접점이 거의 없었어요. 친해진 계기가, 프랑스 유학을 가려고 다들 준비 하고 있었는데요. 프랑스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셨어요. 각오가 다르다고 느껴질 정도로요. 제 각오는 진짜 얕은 각오구나. 감독님은 진짜 너무나도 가고 싶어 하시는구나. 너무나 열정적으로 하셔서 부끄러워져서 저도 열정적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친해지려고 했는데요. 저는 대학 동기 중에도 백혈병으로 먼저 간 친구가 있어요. 두 번째로 겪다 보니까 참 하늘이 무심하다는 말이 이런 상황인 것 같아요. 감독님이 하고 싶었던 것들, 어떻게 보면 제가 그걸 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죄송스러운 마음도 있고 내가 더 잘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도 많이 들게끔 해준 대학원 동기였습니다.

관객┃참석자8

김영조 감독님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우리 평화 영화제에서 상영을 했었고요. 김이석 선생님도 우리 본선 심사위원장 맡아주셨고, 신나리 감독님은 재작년 14회 평화영화제에서 <뼈> 상영을 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하시면서 너무나 기뻐하셨어요. 관객이 많지 않아서 저희들이 감독님께 참 미안했는데 작품을 보고 이렇게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행복하다고 그러셨습니다. 앞으로도 같이 계속 했으면 좋겠다 그랬는데 이제 결국 이런 비보를 듣게 되었고요. 그리고 제가 알고 있었던 작품은 <뼈>, <녹>입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지만 쉬이 잊고 있는 것들에 대한 것들에 대한 기록, 이런 부분에 관심이 많은 감독님인가 그랬는데 우리 일상에서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도 참 많았던 분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고요. 이런 추모의 밤을 마련해 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관객┃참석자9

저는 관객의 입장에서 오늘 참여를 하게 됐습니다. 말씀 들어보니까 영화 제작을 하고 계시거나 학습의 과정에 계시는 분들인데 저는 영화의전당을 부지런히 다니는 올해 나이가 70이 된 손자 키우는 할머니입니다. 저는 다큐멘터리 영화만 모아놓은 걸 오늘 처음 봤거든요. 그 중간중간 여백이 굉장히 명상적이었어요. 일반 상영관에서 흥행이나 이런 부분 때문에 또 참 어렵고 그런데 이런 작품을 일반인들이 접할 수 있게 몇 편씩 모아가지고 볼 수 있는 좀 특별한 기회를 만들어 주셔서 그렇지 않으면 볼 수 없었을 건데 오늘 이렇게 우연히 보게 돼서 감사하고요. 또 저 여백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는 거예요. 그 답을 아직 내가 얻지는 못했는데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게 아마 본인의 몸을 상하게 하지 않았을까 하게 됐습니다. 저도 이제 나이가 70이니까 항상 죽음을 생각을 하거든요. 삶을 어떻게 정리를 해야 될까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에 항상 한 다리를 죽음에 걸치고 있어요. 삶이 절박하고요. 신나리 감독도 그런 절박함을 가지고 만드시지 않았을까요. 오늘 영화 관련된 작업하고 계시는 분들이나 배우고 계시는 분들이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시는 거예요. 지금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지 않습니까? 전부 돈 되는 일을 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쫓아가고 사회가 혼란스러워서 그게 손자 키우는 입장에서 걱정이 되거든요.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그러나. 근데 그 와중에 이런 작품을 만들고 만들다가 자기 삶을 생명을 단축시켜 가면서 이렇게 사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거예요. 신나리 감독님 작품과 또 우리 다른 다큐멘터리 제작하시는 감독님 작품도 좀 자주 영화의 전당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진행┃김이석

네 말씀 감사합니다. 제가 알기로 여기 가족 분이 와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 괜찮으시면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하실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모시겠습니다.

토크┃신혜창

저는 그 신나리 감독 동생 신혜창이라고 하고요. 누나가 하늘로 간 이후에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다고 하셔서 참석하게 됐습니다. 영화도 많이 사랑 했고 오늘 이 자리까지 많은 분들이 와주셔가지고 관심 가져주시고 도와주셨으니 지금까지 많이 행복했겠구나 생각도 좀 해봤고요. 누나가 활동할 때 많이 지원하고 지지해 주고 했었어야 되는데 잔소리 많이 하고 지지를 못해준 게 가슴에 남아 있거든요. 오늘 보니까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시고 도와주시고 해가지고 누나가 지금은 아프지 않고 많이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진행┃김이석

감사합니다. 신나리 감독님께서 찍어놓으신 영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신 감독님이 아까 트레일러 보시면 “내가 가장 예뻤을 때”라는 포스터 들고 있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죠. 남겨놓은 영상, 영화, 그리고 투병 생활 하면서 본인이 셀프로 찍었던 영상들 있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일기, 저도 유가족분들한테 받아서 쭉 봤고요. 고민을 하다가 남아 있는 저희들이 완성해야 되지 않을까 하고 기획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제목은 처음에 들었을 땐 정말 촌스럽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까 그보다 더 좋을 제목이 없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기획하고 완성할 거니까 관심 가져주세요. 

토크┃김영조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제가 일기장을 보니까, 일기가 어떻게 보면 에세이 같고 어떻게 보면 시 같기도 하고 편지 같기도 하고 그런 글이에요. 거기에 주어가 당신이에요. 아픈 기간 동안에 그분들과의 시간들을 같이 공유했던 것 같아요. 근데 내용 중에 읽어보면, 이 얘기는 내 얘기인데 라고 하는 시간들이 있어요. 저뿐만 아니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거든요. 저는 그게 궁금해졌고 이 영화 속에는 아마 그분들을 좀 찾아가는 한 시퀀스가 있을 것 같아요. 혹 신 감독님께 병문안 가셨거나 이후에 몇 분들은 어느 공간에 가서 촬영도 하고 하셨더라고요. 그런 일들은 제가 잘은 모르거든요. 사연이 있으신 분들은 얘기를 좀 해 주시면은 영화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고요. 마지막으로, 김영효 감독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는 그런 장면이 있잖아요. 그 친구도 신 감독하고 같이 작업을 했는데 신 감독한테 선물할 거라고 명함을 만들었어요. 신 감독이 있을 때 선물해야 했는데, 이걸 주지 못한 채로 제 사무실에 놓고 갔거든요. 극장을 나서면서 추억 삼아-첫번째 신 감독 명함이에요. 신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 분홍색- 갖고 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토크┃이진승

저도 신나리 감독님과 작업을 하던 <도반>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 작품을 완성을 못 보셨는데 어떻게 해서든 좋은 작품으로 완성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진행┃김이석

네. 아쉽지만 여기서 오늘 행사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러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