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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5. 30. (금) 오후 7시 30분 영화의전당 인디플러스
부산로컬시네마데이 Busan Local Cinema Day

로컬 픽, 시간과 빛 Local Pick, Bright Time

참여 | 박동규(<공간 속 기억> 연출) 이승화(<도시의 분홍색 발자국> 연출) 노영미(<일루젼> 연출) 진행 | 구형준(영화평론가)
관찰자들

그들의 카메라는 세계를 관찰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틈새를 헤매거나, 과거의 흔적을 더듬고, 이 세태를 진단합니다. 때로는 역사와 자무하며 과거에 머무르지 않은 채 어딘가에서 반복되기도 하고, 미래를 예측하기도 합니다. 기억, 도시, 상처, 희망, 가능성들, 사회의 구조... 5월의 로컬 픽, 시간과 빛이 소개하는 다섯 명의 관찰자들이 다루는 대상은 각기 다르지만, 이들이 모여 만들어진 하나의 풍경 안에서 떠오르는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시간을 지나왔고, 그것은 어떤 파장을 일으켰으며, 또 우리는 어떤 시간을 향해 가고 있나요. (부산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김지연)

공간 속 기억 The Place We Lived In

박동규┃다큐멘터리┃컬러┃18분┃2024┃대한민국┃15+

시놉시스   “내 피난 갔을 때 12살 먹었거든 피난 갔다가 집에 오니 연기가 솔솔 나는 거라” 6 .25 전쟁이 끝나고 할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셨을 때. 집은 다 타버려 연기가 나고 있었다. 집을 복구하기 위해, 할아버지는 가족들과 함께 집을 다시 지어가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70년. 시간이 흐르면서 집은 서서히 모습을 변해갔고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거쳐 갔다. 그동안, 집은 할아버지와 함께 자리를 지키며 가족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각자는 '집'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연출의도   집이란 무슨 의미일까. 누군가에게는 아늑한 휴식공간이고 누군가에게는 내가 살아왔던 공간일 것이다. 몇십 년이라는 시간 동안 각자의 시간에서 존재해왔던 집을 각자 다른 사람의 기억으로 나타내고자 한다. 가족들의 기억이 합쳐지며 집을 새롭게 구성하고, 이에 따라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프로그램노트   영화 속 화자들이 말하는 그 집은 화자들이 존재하기 전부터 집으로서 존재했을 것이다. 영화 속 나이가 가장 많은 할아버지의 증언 속에서 그 집은 한번 불탔었다. 불탄 그 집은 할아버지를 통해서 다시 재건되었다. 그 가문의 집이 여기에 있다. 이 집에 대한 추억들이 영화 내내 다양한 화자를 통해서 증언된다. 그 증언들은 오래된 일일수록 마치 어제 있었던 일 같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오히려 화자들 중 어린 나이에 속한 사람들의 기억들이 일치하지 않는데 그래서 이 순간이 더욱 생경하게 다가온다. 집은 현재의 모습으로 촬영되었고 보여지지만 화자들이 말하는 기억들의 시간은 모두 다르다. 여기서 여러 시점들이 생성된다. 그러나 모두 현재의 집을 보고 있다. 화자들의 시점, 감독의 시점을 지나 영화의 시점은 관객인 나의 시점으로 이동한다. 영화 속 내가 가보지 않은 공간을 유심히 보다 보면 내가 실제로 가봤던 공간인 시골에 혼자 계신 할머니의 공간으로 내 마음이 자연스럽게 이동하게 된다. (박천현)

할아버지가 떠난 뒤 After my Grandpa

에브루 아브치┃다큐멘터리┃컬러┃20분┃2024┃대한민국┃15+

시놉시스   에브루의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였다. 여러 해가 지난 뒤, 그의 손녀는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처음 도착한 도시 부산에서의 이야기를 전한다.

연출의도   영화는 할아버지의 전쟁 기억이 담긴 부산의 유엔 기념 묘지를 방문하면서 시작되었다. 그곳에서 전사한 군인들의 희생을 느끼며 과거와 연결되었고, 할아버지 역시 그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또 다른 중요한 장소인 부산항은 변화와 전환을 상징한다. 할아버지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느꼈을 불안과 두려움을 상상하며, 이곳이 그의 과거와 나의 현재를 잇는 다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영화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영향과 기억의 중요성을 전하고, 평화와 이해를 찾는 여정을 담고자 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한국전쟁의 고통은 지금도 다른 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프로그램노트   우리는 원하면 어디든지 갈 수 있고, 궁금한 정보는 무엇이든 찾을 수 있는 무한 연결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로 인한 지나친 편리성은 사람들의 연결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하지만 어떤 매개체의 발견은 뜻밖의 연결점을 제시하며 혹자가 생생한 결속의 순간을 무량으로 느끼게 한다. <할아버지가 떠난 뒤>에서 숟가락과 포크가 그런 매체로 작용한다. 에브루 아브치 감독의 할아버지는 한국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부산으로 온 튀르키예 군인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보급품으로 받은 미제 숟가락과 포크를 가족 선물 겸 기념품으로 챙겨 고향으로 돌아갔다. 튀르키예에 있는 그의 가족은 거의 70년간 그 기물을 식사 시간에 사용해 왔다. 그리고 프로젝트 작업을 위해 부산으로 온 에브루 아브치 감독은 박물관에 해당 기물이 전시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어떻게 보면 한 나라의 역사를 함의하는 물품이 그녀와 그녀 가족의 일상 중에 무던히 쓰이고 있었던 셈이다. 감독은 숟가락과 포크를 매개 삼아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그가 해준 얘기들을 복기하고, 한반도의 뼈아픈 역사에 대해 돌아본다. <할아버지가 떠난 뒤>는 여러 면에서 단출하고, 선명하고, 영리한 영화다. (윤지혜)

도시의 분홍색 발자국 The pink footprints of the city

이승화┃극영화┃컬러┃28분┃2024┃대한민국┃15+

시놉시스   슬럼프로 인해 발레단을 그만두고 전단지 부착 알바를 하며 지내던 희재는 어느날 자신의 전단지를 알고 다가오는 남자, 시윤을 만난다. 당황스러운 시윤과의 첫만남. 그날 이후 희재의 마음 속에는 시윤에 대한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생겨나고, 그에게 자꾸만 이끌린다.

연출의도   꺼져버렸다고 생각한 불씨가 그저 스쳐지나갈 뿐인 바람 한 점에 속절없이 커져버린다. 그 바람은 진짜일까, 아님 내 남은 집착일까.

프로그램노트   사랑과 구원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겐 눈앞에 있는 작은 불씨라도 마치 큰 화염처럼 느껴지게 한다. 어쩌면 나에게 맞는 사랑과 구원의 모양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 속 매일 전단지 알바를 하고 있는 희재 앞에 우연히 시윤이 나타난다. 둘은 잠깐의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지만 서로의 모양을 공유한다. 희재는 정말로 가벼워지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반면 시윤은 이미 그 자체로서 가벼워 보인다. 오히려 무거워지기 위해서 혹은 희재가 그전에 포기했던 일을 대신하기 위해서 서울로 올라가는 듯 보인다. 매일 밤 혼자서 희재가 걸었던 도시의 분홍색 발자국을 몰래 지켜봤던 시윤의 시점을 상상해 본다. 이 만남이 어쩌면 꿈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둘이서 함께 추는 춤을 그려본다. (박천현)

자승자박 옴니버스 Our Ordinary Days

황윤정┃애니메이션┃컬러┃13분┃2024┃대한민국┃15+

시놉시스   애써 외면하려 해도 마음에 밟히는 것들이 있다. 공기 중에 답답한 미움과 한계가 가득하다. 이 공기를 계속 마시다간 숨이 막혀버릴지도 모른다. 그게 딱히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런대로 살아간다. 자신을 옭아매고 서로를 옭아맨다.

연출의도   우리는 발전이 제공하는 편향성과 양극화를 겪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며 올바른 경쟁과 생활을 한다고 착각한다. <자승자박 옴니버스>는 여기서 발생하는 몇 가지 작은 문제들을 이야기한다. 제목의 자승자박은 서로 피해 받고 가해하는 허황된 소속감을 뜻한다.

프로그램노트   “맑고 고운 심성을 가꾸도록 우리 모두가 바른 길잡이가 되는 것 따위엔 관심이 없습니다.” 어딘가 묘하게 비틀린 안내문은 일단 그렇다 치고 넘어가자. 퍽 강렬하고 재치 있는 다섯 개의 우화가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어느 때보다 개성을 중시하면서도 더없이 몰개성한 유행이 판치는 세태, 개인의 노력으론 쉬이 바꿀 수 없는 사회적 인식과 그로 인한 구조의 한계, 계급화된 노동 환경이 초래하는 파멸적 결말, 공동체 내 자행되는 폭력의 아이러니, 맹렬히 끓어올랐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갈아치워지는 인스턴트식 관계. 각각의 에피소드가 현대 사회의 문제를 꼬집는 동안, 객석에서 마음 편히 웃는 자를 색출하는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면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자승자박 옴니버스>는 오늘날 진정한 자승자박의 행위자를 건조하게 비웃는, 깜찍하고도 오싹한 애니메이션이다. (함윤정)

ILLUSION

노영미┃애니메이션┃컬러┃12분┃2024┃대한민국┃15+

시놉시스   수미는 폐기된 스푼으로 플라스틱 전등을 만들고 있다. 그녀는 오래된 생각과 흘러간 인연을 떠올리다 세 가지 환상을 만나게 된다.

연출의도   백 년이 훌쩍 지난 시(Illusion by Ella Wheeler Wilcox ,1902), 박제된 박물관의 오픈 소스들 그리고 최신의 3D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의 협곡을 통과하며, 영원과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프로그램노트   현재로부터 극심한 기후변화가 가속되었고 그로 인해 연쇄적인 대전환을 맞이한 것으로 보이는 가상의 근미래, 지구는 해가 지는 찰나의 순간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선셋 루프’에 갇힌 채 시간의 축이 뒤틀린 행성이 되었다. 사방이 블라인드로 가려진 어느 어둑한 집 안, 한 때 유명배우였던 ‘수미’가 폐기된 플라스틱 스푼으로 전등을 만든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녀는 영화계를 떠나 환경운동가

로서의 삶을 산 듯 하다. 그런 수미에게 과거 그녀가 출연해 명성을 샀던 영화의 재개봉 소식을 알리는 초대 메일이 도착하고 수미는 회상에 잠긴다. 불현듯 떠오른 달빛을 따라 펼쳐지는 환상적인 이미지 위로 19세기 시인 엘라 휠러 윌콕스가 쓴 동명의 시 ‘일루전’의 구절이 흐른다. 영화 <ILLUSION>은 백 여 년 전 인간의 존재와 세계의 본질을 묻던 문장들과 수 십 년의 세월이 새겨진 수미의 주름진 얼굴, 족히 백년은 썩지 않는 플라스틱의 물성, 온라인에 영구히 저장되는 데이터로 생산된 이미지, 인간의 속도를 뛰어 넘는 인공지능으로 도출한 텍스트와 음성 등이 서로 조응하거나 충돌하면서 유한한 삶이라는 숙명을 끌어안은 인간이 끊임없이 탐구해 온 테마인 ‘영원’에 대해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고찰하게 만든다. (이남영)

상영 후 토크┃박동규

최대한 화면 바깥에 있는 사운드를 활용해 보자는 생각이 가장 컸어요. 내레이션이 어찌 보면 화면 바깥에서 계속 침범하잖아요 그 작용이 최대한 계속 흘러가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가족들 인터뷰 하면서 내레이션부터 땄고요. 그걸 배열하는 조합이 솔직히 말하면 힘들었습니다. 양은 방대했고 이거를 영화로 만들려면 줄여야 되니까 카테고리를 정해서 저희 스태프들하고 셋이서 포스트잇에 다 적어놓고 순서를 만들고 편집을 하고. 일단은 거기에 대한 각본이라고 해야 되나요? 순서를 만들고 거기에 대한 이 장면을 찍어야 하는데 저는 애초에 생각을 한 게 이전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지금 뭐 어떻게 재현을 할 수가 없는 거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그 집, 그 장소에 저희 선대조들이 살았겠지만은 지금 말씀 드리고 있는 저희 가족들만 살았던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부러 인물을 특정한다는 느낌을 안 주려고 노력했고요. 그리고 할아버지가 나오는 장면은 원래는 할아버지가 이 집을 찍으면 어떤 곳을 찍으실까 하는 생각에 카메라를 한번 들려드렸었어요.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힘드시다고 잠깐 들고 마셨던 거거든요. 딱 그 과정을 카메라가 마침 그 자리에 있어서 담게 됐는데 어떻게 보면은 할아버지가 저희 집에 기억에 대한 그 자체라고 생각을 했어요.

상영 후 토크┃이승화

로맨스 영화를 보면 남자,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항상 있는데, 제가 봤을 때는 어떤 사건이 있고, 거기서 둘이 눈이 마주치고, 그다음에 넘어가면 바로 연인이 되어 있거나 이런 식으로 넘어가는 영화들이 많았어요. 저는 저기서 어떤 심리적인 변화 같은 게 있어서 사귀는 단계로까지 마음이 발전하는지가 너무 궁금한데 왜 그거를 해소해 주는 영화는 없는 거지? 하면서 그 사이에 있는 구간을 그려보고 싶다, 뭔가 마음이 이끌려 가는 순간을 좀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고요.


시나리오를 들고 현장에 갈 때는, 내가 최대한 헷갈리지 않은 상태에서 가져가야 혼란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때는 그 신에 대해서 내가 어떤 감정을 뽑아가겠다는 확신을 가진상태로 배우들이랑 소통을 했고요. 그래서 배우들한테 다음 테이크, 다음 테이크 찍을 때 디테일하게만 토씨를 다르게 해달라고 했어요. 너무 차갑다, 조금 더 능글하고 꼬시려는 느낌으로 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정말 작은 디테일씩만 변화를 줬었고 편집할 때 제 생각과 많이 달라서 반응숏을 새로 넣으면서 이것저것 많이 해보고 그랬었고요.

상영 후 토크┃노영미

당시에 두 명이서 만들었거든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줌으로 만나서 새로운 기술에 대해서 이야기도 하고 테스트를 한 1년간 했었어요. 그런 과정에서 생겨나는 어떤 감회를 만들면 좋겠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예요. 3D 소프트웨어나 AI를 접하면서-그동안 저작권이 없는 자료나 역사적인 자료를 가지고 이제 작업을 많이 했었는데- 새로운 것들을 접하니까 감흥이 확 나더라고요. 거창하지만 어떤 시간과 존재에 대한 생각들도 좀 많이 나고 해서 만든 것이 일루전이었습니다.


수미는 아는 배우님한테 직접 녹음도 해보기는 했었었거든요. 근데 이게 영화랑 어울리지도 않고 이 모든 게 연기의 영역인 게 이 영화랑 더 어울리지 않을까. 그러니까 수미도 기계가 배우였다가 환경 운동가인 걸 연기하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그래서 동작들도 저희가 이게 다 모션 캡처인데 동작을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준비 동작과 끝 동작을 일부러 좀 뺐어요. 더 기계스럽게, 수미가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게 그렇게 했고. 목소리들은 요새 AI 보이스에도 감정이 들어가고 되게 다양하잖아요. 그래서 기계인 거를 숨기지 않되 일정한 감정은 들어가게 그렇게 설정을 했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