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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픽, 시간과 빛 Local Pick, Bright Time
기록이라는 행위에 대해 생각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역사의 현장까지 그 대상은 다양하지만, 목적은 몇 가지로 꽤 명료하게 추려집니다. 잊지 않기 위해서, 정리하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전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기록은 미래를 향해있는 현재의 행위겠습니다. 모든 것이 마침내는 사라지더라도 기록은 최소한 유한자와 그 세계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무엇을, 어떤 형태로 기록할 것인가? 어떤 원칙으로 그것을 쌓아갈까? 그렇게 만들어진 기록을 기억하거나 누군가와 공유하는 데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5월의 “기록자들”은 무엇이라 답하고 있나요. <시월>은 출신지인 여수와 현재 살고 있는 부산에서 격동했던 역사의 순간, 여순사건과 부마항쟁을 나란히 놓아봅니다. 바지런히 몸을 놀리며 보내는 일상의 끝, 어느 것도 허투루 할 수 없는 손길이 빚어낸 술을 나눠마시는 풍경이 <누룩의 시간>을 향기롭게 스치고 있습니다. 장성한 자식을 보며 드는 마음을, 이미 그 시간을 지나온 엄마에게 고백하는 <엄마의 정원>에 흐르는 온기는 더 이상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미시 서사로 출발한 기록이 가닿은 지점은 서로 다를지라도 그것은 삶의 보편성을 발견하며 마음이 움직이는 어떤 값의 자리에 수렴할 것입니다. (부산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김지연)
시월 October
시놉시스 나의 고향, 여수와 부산. 두 곳엔 기억과 망각 속 반복된 시월이 스며있다. 결코 우연이 아닌 시월은 그렇게 울긋불긋 물들었다.
연출의도 여수에서 태어나 20년을 보냈고 부산에서 일곱 번째 해를 보내고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넘실거리는 튜브들, 산과 바다를 잇고 있는 케이블카, 빼곡한 사람들. 여수와 부산의 이미지들이다. 이 이미지들 너머엔 국가폭력의 순간들이 존재한다. 1948년 10월 여순사건, 1979년 10월 부마민주 항쟁. 카메라를 들고 여수와 부산을 오가며, 기억과 망각 속에 존재하는 시월을 담고 있다. 역사의 반복은 우연이 아니다. 이 영화는 시간이 흘러 많은 것이 변했지만, 영원할 시월을 이어본다.
프로그램노트 1948년 여수와 1979년 부산은 얼마나 멀리 있으며, 또 얼마나 가까울까. 한국 근현대사에서 1948년 10월 여순사건과 1979년 10월 부마항쟁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각자의 이유로 상대적 조명을 덜 받았다. 영화는 ‘나의 고향 여수와 부산’이라는 자막을 띄우며 서막을 연다. 감독은 사적 기억으로 두 공간의 장소성을 세밀히 들여다본다. 유령처럼 도처를 떠도는 카메라는 과거의 상흔이 아로새겨진 장소들의 현재와 마주한다. 그 곳은 어느새 관광지로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과거의 상징성은 사라진 채 자리 잡고 있다. 그 장소성을 토대로 '시월'은 끊임없이 망각에 저항한다. 단단한 결기 속 흑백 화면의 장소들은 잠시 멈추거나 느려지거나, 우회하며 인간의 기억을 형상화한다. 환원되지 않음을 구체화한 사운드 디자인, 에세이적인 작법으로 다가가는 감독만의 이정표를 따라가 만나게 되는 놀라움을 경험해보시길. (이동윤)
누룩의 시간 Time of yeast
시놉시스 곡식이 썩지 않고 술이 되게 하는 누룩의 특성에 매료된 나는 울주의 한 도가를 찾는다. 그곳에서 누룩을 만드는 아주머니들을 만나고 바쁜 농가의 삶 속에서 누룩 만드는 일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듣게 된다. 계속 미뤄지던 ‘누룩 만드는 날’이 드디어 정해지고, 모두 도가에 모이게 되는데 긴장한 탓인지 나는 그만 큰 실수를 하고 만다.
연출의도 꾸준히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는 만드는 이의 삶이 묻어 있다. 누룩을 만드는 여성들이 누군가를 입히고 먹이고 키우는 일상은 누룩이 적절한 조건에서 곡식을 술로 만드는 시간으로, 또 작가가 예술작품을 제작하는 시간으로 치환되기도 한다. 누룩을 만드는 여성들의 시간과 작가의 예술작업, 누룩의 시간을 함께 조명해 봄으로써 우리 삶의 다양한 변화의 가능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프로그램노트 곡식이 썩지 않고 발효되어 술로 변하게 하는 누룩. 감독은 누룩을 만드는 아주머니들을 찾아다니며 도가에서 누룩을 만드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사실 이 다큐는 누룩을 만드는 시간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룩을 디디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과 누룩을 만들 줄 아는 아주머니들과 나누는 대화가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기다림의 끝 속에 기어코 누룩이 만들어지는 시간을 지켜보는 일은 어쩐지 경건하고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한다. (김필남)
엄마의 정원 Mother’s Garden
시놉시스 매일 아침 산에 오르는 엄마의 뒷모습, 책읽는 노년의 엄마목소리, 아파트 뒤편에 가꾸어 놓으신 엄마의 정원, 그런 일상들이 엄마의 기도였고, 그 정원에서 자란 자녀들은 무성한 풀처럼 익어간다. 그 고마움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연출의도 노년의 부모님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하루같은 일상이지만, 그속에 있었던 부모님을 영상으로 담아두고 싶었다. 훗날 그렇게 기억을 추억으로 만들고 싶었다.
프로그램노트 이 작품을 위해 만든이가 쓴 짧은 글을 다시 옮겨보고 싶다. “매일 아침 산에 오르는 엄마의 뒷모습, 책 읽는 노년의 엄마 목소리, 아파트 뒤편에 가꾸어 놓으신 엄마의 정원, 그런 일상들이 엄마의 기도였고, 그 정원에서 자란 자녀들은 무성한 풀처럼 익어간다. 그 고마움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나는 이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완성된 영화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마다 들었던 생각이 많진 않더라도, 이 영화의 곁에 둘 만한 것인지는 좀 더 시간이 지나 보아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꼭 하나, 금방 후회가 들더라도 ‘제25회 부산독립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이 작품을 위해 이런 생각을 쓰고 싶다.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이미 흘러 가버린 시간이라면, 영화를 만드는 이는 모든 것을 걸고 그 시간에 대한 진심과 존중을 갖춰야 할 것이다.”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주어진 이후, 영화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를 촬영을 준비하며, 카메라를 켜고, 엄마의 길을 몇 발자국 뒤에서 소리 없이 따라나선 이.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엄마이자, 고마움으로 무성한 첫 작품 '엄마의 정원'을 만든 장인자 님의 아름답고 깊은 마음을 관객들에게 망설임 없이 권하고 싶다. (오민욱)
산 그리고 바다. 이런 자연적인 요소로 작품에 접근을 먼저 하게 되었어요. 실제로 산맥은 더 오래 전부터 존재했었잖아요. 사건 당시에도 산맥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공간을 지켜왔다고 생각 했고요. 바다 또한 항상 그 자리에서 흐르고 계속 반복되고 순환되는 존재들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 자연들이 모든 일을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로 표현하거나 그러지는 않지만 사실 그들이 다 봤잖아요.
영화를 준비하면서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 뵙고 인터뷰를 통해서 제가 책이나 기사로 봤던 것들보다 더 큰 아픔을 들려주셨거든요. 제가 보는 기록물과 기억과 그리고 선생님들이 직접 기억하시는 것과 그 선생님들 이전에 실제 희생자였던 분들이 기억하는 게 다 다를 거라고 생각을 해요. 하지만 그 모든 사람들이 기록하고자 하는 건 어느 정도 같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이 영화에서 저는 그 기억들과 기록이 같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2012년에 여수 엑스포를 했었는데 그때 제가 정말 많이 갔었거든요. (...) 분수쇼가 그때부터 계속 했었던 거거든요. 근데 중학생 때에 봤던 거랑 지금 제가 이 사건을 알고 배우면서 다시 가서 봤을 때 많이 다르더라고요. 이 엑스포라는 공간 자체도 사실 여순 사건이 일어났던 앞바다를 매립을 해서 그 위에 조형물을 만들고 그런 건데 이제 그걸 다 알고 보니까 많이 다르더라고요.
저는 원래 영화를 하는 사람은 아니고 타피스트리 직조를 하는 사람인데 (...) 어느 날 저의 작품을 복순도가라고 작품 의뢰를 해오셨어요. 거기 가서 작품을 설치하다가 막걸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 듣고 누룩방에 처음 들어가서 봤는데, 정말 너무너무 매력적이고 멋있었거든요. 그래서 이걸 촬영하고 싶다고 대표님한테 얘기하고 누룩 빚는 아주머니들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영화에 저는 그림자 넣는 걸 좋아해가지고요. 뭔가를 그대로 다 담는 것보다는 좀 뒤로 물러서서 그림자나 실루엣으로 의미를 좀 주고 싶어 했어요. (...) 촬영에서도 제가 근접 촬영해서 확대를 하는 걸 좋아해요. 카메라를 바로 들이대면 사람들이 벌써 의식하고 연기를 하게 되기 때문에요. 카메라를 그냥 바닥에 두어 사람은 안 나오지만 목소리라든지 그런 것들이 들어오도록 했습니다.
아주머니들이 부끄럽다고 촬영을 못하게 했어요. 손만 나오게 찍겠습니다, 하면서 찍고 이랬는데 나중에는 누룩 만들 때, 장작불을 지피잖아요. 죄송스러운 게 연기가 너무 많이 나가지고 저도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카메라 여기 한 대, 저 뒤에 한 대 놔뒀는데요. 아주머니들이 다시 한 번 더 찍어야 될 것 같다고 해주셨어요.
이제 주제를 잡으면서 부모님을 (영화로) 남겨 놓으면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엄마가 그리울 때 볼 수 있겠구나 하는 그 생각이 가장 큰 목적이었거든요. (…) 그 때 저희 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이제는 대를 바꾸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자식들이 타지에 있을 때 하고 다르게 결혼을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니까 생각이 또 조금 한 획을 꺾게 되더라고요.
기록과 기억은 한 사람의 시선이어야 되거든요. 기억도 기록도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같아요. (...) 하고싶은 게 뭔가에 따라 달라지는데 세월이 지나서 그때 그 시선에서 봤을 때에도 그걸 기억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한 70%가 휴대폰으로 뒤를 따라가면서 찍은 거고 (…) 익숙하지가 않으니까 잘 찍혔는지 안 찍혔는지에 관한 확신이 없어 촬영한 걸 쓸 수 있으려나 없으려나 할 때 저희 딸에게서 전화가 온 거예요. 그래서 엄마가 지금 이런 수업을 듣고 있는데 할머니하고 통화 내용이 필요하다, 녹음을 하나 해달라 얘기했어요. 그래서 녹음을 했는데 너무 잘한 거예요. 그래서 이거 꼭 영화에 넣어야 되겠다! 이렇게 해서 이제 (오프닝과 엔딩) 앞뒤로 깔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