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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픽, 시간과 빛 Local Pick, Bright Time
인간이 이야기를 욕망하는 한 픽션은 영원할 것 같습니다. 다소간의 과장과 왜곡이 현실을 넘어서더라도 코미디가 주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박범진의 <슈퍼히어로>는 전작 <약구르트>와 같이 야구에 푹 빠진 아이들의 세계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미 지나왔기 때문에 안다고 쉽게 생각해 버리지만,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나름대로 세밀하고 진지하고 견고했는지 곧잘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슈퍼히어로>는 잊어버린 마음을 떠올리며 영화가 건네는 환상에 슬그머니 미소하게 만듭니다. 이강욱의 <김밥이에요!>에서 평범한 사람의 삶에 그려 넣은 판타지는, 고단한 현실을 다시 붙들고 살게 하는 힘입니다. 좋아하는 배우에게 그의 팬다운 오마주를 보낸 <아듀! 오맹달>에 이어 그는 <김밥이에요!>에서도 명랑만화, 동화, 코미디가 품은 세상과 삶을 향한 긍정을 간단명료하게 드러냅니다. <지구종말 vs. 사랑>에서 보듯이 전수빈은 캐릭터와 대사에 공을 들이는 연출자입니다. 영화의 시간, 공간, 이미지… 모든 것에 선행해 바로 다음이 궁금해지는 전개를 끌고 가는 건 오로지 대사입니다. 그런 데서 전수빈은 스크루볼 코미디나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추측해보게 되기도 합니다.
영화이기에 가능한 상상이 빚어낸 영화들이 저마다 닫아두었던 9와 ¾ 승강장을 열게 할 때, 픽션은 그렇게 만세를 누리고 우리는 달라지지 않은 일상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부산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김지연)
슈퍼히어로 Superhero
시놉시스 야구선수를 꿈꾸는 초등학생 ‘범’은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과의 야구 경기에서 빈번히 패한다. 복수를 꿈꾸던 그때, 자신의 롤 모델인 최동원 선수가 눈앞에 나타난다.
연출의도 기쁨과 꿈이 넘치던 자신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힘차게 살아나갈 앞으로를 위해 조금이나마 이 영화가 힘이 되고자 합니다.
프로그램노트 명품 투수를 꿈꾸는 꼬마 범(김예겸)은 오늘도 동네 패거리에게 홈런을 두들겨 맞고 싸인볼을 뺏긴다. 패거리를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눈앞에 콜라 캔도 맞추지 못하는 눈물 나는 제구력이다. 이런 그에게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레전드 최동원(권해원)이 눈 앞에 나타난다. 아무렇지 않게 저녁을 먹은 최동원은 범과 함께 명품 투수가 되기 위한 지옥 특훈을 실시한다. 박범진 감독은 전작 '약구르트' (2022)와 마찬가지로 야구하는 꼬마를 등장시킨다. '약구르트'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스윙 연습인 반면 '슈퍼히어로'의 투구 연습은 보다 삶에 가깝다. 최동원의 ‘함 해보입시다’ 정신이 유쾌하고 키치적인 연출로 영화 내내 다가오고, 주인공의 고군분투에 어느새 열띤 응원을 보내게 한다. 싫어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연출자의 능력 중 하나라면 '슈퍼히어로'는 그 최전선에 머무른다. 무엇보다 최동원이 환생한 줄 알았다. (이동윤)
김밥이에요! It’s Gimbap!
시놉시스 손님 하나 없는 김밥집에 삐삐가 나타났다.
연출의도 가끔은 짧은 꿈을 꾸는 것도 삶에 작은 위안이 된다면 좋겠다. 아주 작더라도.
프로그램노트 인정한다. 산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고달프다는 것을. 우리는 내 마음과 같지 않은 일과 사람 앞에서 포기하거나 냉소를 보내기가 쉽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씩씩하게 전진하는 태도는 언제나 더 어려운 법이다. 이강욱은 '아듀, 오맹달'(2021)에 이어 '김밥이에요!''에서도 역시 판타지와 유머, 장르를 통과해 그런 세계를 구현하려 애쓴다. 이번에는 말괄량이 삐삐가 김밥가게에 나타나서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한바탕 흔들고 지나간다. 어른이 된 우리는 삶과 현실이 여간해서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백일몽에 불과하다고 해도, 사람을 살게 하는 건 그런 순간들이다. 그러니 이강욱의 인물은 삶과 현실에 지칠 순 있지만 결코 가엾지 않고, 상황이 나쁘더라도 구차하지는 않다. 서툰 솜씨로 만든 티가 역력하고 그걸 애써 숨길 생각이 없는 영화의 효과와 미술도 마찬가지다. 환영성을 무시하며 뻔뻔스럽게 건네오는 재치와 익살, 그 기저에 흐르는 천진한 감성이 보는 사람의 마음에 잔잔한 동요를 일으킨다. (김지연)
지구 종말 vs. 사랑
Apocalypse vs. Love
시놉시스 윤진은 ‘청년 글짓기 교실’에서 만난 해경의 갑작스러운 고백을 거절한다. 하지만 글짓기 교사 영지는 다음 수업 때까지 공동 글짓기를 해 올 것을 두 사람에게 제안한다. 얼떨결에 한 조가 된 두 사람은 각자 ‘종말’과 ‘사랑’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의견 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결국 대화는 치열한 공방으로 치닫는다.
연출의도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로부터 비롯된 종말에 대한 고민도 담고 싶고, 사랑에 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하고 싶은 욕심으로 빚은 이야기다. 종말과 사랑, 과연 무엇이 더 중요한가. 지금 우리는 무엇에 관해 이야기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윤진’과 ‘해경’ 두 사람의 이야기로 풀어 보고자 했다.
프로그램노트 해경(김현목)은 글짓기 수업을 함께 듣는 윤진(정의진)에게 진심을 담아 고백하지만 면전에서 까인다. 이후 두 사람은 한 조가 되어 글을 쓰게 되고, 어떤 주제로 쓸지 논의한다. 윤진은 지구 종말, 해경은 사랑을 선택하고 둘의 대립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질문을 드려보겠다.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사랑나무 한 그루를 심을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루어진 영화다. 단편 극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시나리오의 정수처럼 영화는 새롭게 이어질 관계의 종착역에 대해 감독 특유의 텐션으로 이리저리 휘몰아친다. 씬에 대한 전체 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개별 숏은 개별 씬 최적의 마디마다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 너무나 귀엽다. (이동윤)
인물을 만들 때 일단 아이는 제가 어릴 때의 모습을 최대한 담으려고 노력했고요. 형의 모습을 담을 때는 지금 저의 생각을 많이 담으려고 했어요. 그래서 저라는 사람을 현재와 과거로 양분화해서 인물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어요. 제가 중학교 때까지 야구를 했는데, 겪었던 이야기를 썼다 보니까 사실 이 인물이 어떠한 행동을 할 것이라는 데에 있어서는 생각하고 만들어내기가 쉬웠던 것 같습니다. 최동원 선수는 제가 실제로 본 적도 없고 제가 진정으로 좋아하며 야구를 할 때는 돌아가신 상태였기 때문에, 그 분에 대해서는 뭔가 묘사를 한다기보다는 제가 좋아할 만한 요소들과 그리고 램프의 요정 지니를 생각하며 만들었어요. 이 주인공들에게 좀 유쾌한 모습으로 보여지길 원했어요. 제가 생각한 롤 모델이란 것이 그런 것이기도 했고요.
보통 영화를 1.85:1 사이즈나 2.37:1 사이즈로 찍는데 저는 4:3, 옛날 브라운관 TV 시절의 사이즈로 만들려고 했거든요. 단순하고 아담하고 정감이 가는 그런 화면 사이즈로 영화 톤을 맞추고 싶었어요. 어차피 선잠을 자다가 꿈에 나오는 장면이기 때문에 코미디도 과장법이나 정교한 코미디나 이런 건 아니더라도 그냥 한 번 픽 웃는 정도의 엉뚱함을 담으려고 생각을 했고요. 특수효과도 수작업 특수효과가 나오는데 되게 조악하게 종이로 인쇄를 해가지고 미니어처를 만들어 풍선에 날리는 장면을 찍었는데 녹음하던 스태프까지 밑에서 솜을 막 손으로 잡아 움직여서 만든 장면이었어요. 풍선이 마치 산책하듯이, 그리고 종잇장처럼 가볍게 점점점 올라가는 느낌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삶에 지치고 막막하고 힘들지만 그런 삶에서 아주 짧은 순간을 코미디라고 생각하고 넣었어요.
가장 고려했던 건 두 인물들 간의 밸런스였어요. 지구 종말에 대해 이야기하는 윤진이의 입장에 더 공감을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해경의 입장에 공감을 할 수도 있는데 그런 두 사람의 논리가 어느 한쪽으로 쉽게 판가름나지 않도록 그 힘의 밸런스가 맞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논리가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결코 어느 한쪽으로 답을 내릴 수 없는 상태로 가게 되고 마지막까지도 정답을 내리지 않는 그런 균형을 가장 맞춰가는 걸 중점적으로 생각을 했고요. 대사를 쓸 때 주의를 하는 게 있다면 저는 유행에 대한 반감이 있거든요. 당대의 유행어라든지 문화 요소, 이런 것들을 최대한 피해서 클래식하게 대사를 구성하는 게 그 영화가 수명을 오래 가져가는 방법이 아닌가 해요. 몇 년이 지난 후에도 낡아 보이지 않을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작업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