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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픽, 시간과 빛 Local Pick, Bright Time
영화제작 현장을 보기도 듣기도 합니다. 카메라의 앞과 뒤에서, 혹은 컷을 외치는 순간을 기점으로, 영화와 삶 사이를 오가는 그 현실의 풍경 앞에 있으면 사람은 꿈이 없이 살 수 없다는 말에 어느덧 수긍하게 됩니다. 그들이 영화를 삶으로 선택했는지 잠시 그 곁을 지나가는 것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저 그들이 삶에 한번 영화를 들여본 것만 확실할 뿐입니다. 그것이 이들로 하여금 이전과 어떤 다른 삶을 살게 하는지 역시 우리는 모를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나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보는 이들 저마다가 가진 처음의 마음을 건드린다고 말할 순 있습니다. 설렘, 기대, 흥분, 두려움, 낯섦, 불안의 감정들이 엉겨있는 그 처음 말입니다. 개별 영화들 안에서는 열아홉에서 스물이 된 풋풋한 소녀들, 누군가에게 다른 일면을 보이는 일과 또 그걸 목격하게 되는 일, 그리고 어느 순간 용기를 내보는 일, 혹은 말 그대로 판타지 같은 상황에 직면해 균열을 일으키는 일상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어른의 나이가 되더라도 그렇게 훌쩍 어른이 되지는 않듯, 삶의 어느 길목을 서성이는 사람들의 마음이 조심스레 흘러가는 모양을 바라보다가 문득 내 마음에 스민 온기를 감지합니다. 그들의 다음 시간이 다가오는 계절처럼 깊어질 것을 기대해 본다면 거기엔 어떤 역학이 작동하나요. 그런 것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한때, 그러니까 그 시간을 통과하기 이전, 계속될 것만 같았던 어떤 마음들, 그러나 끝내 거기에 남겨두고 온 어느 순간의 나를 돌아보는 마음에서 기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산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김지연)
어린 겨울 Little Winter
시놉시스 졸업을 앞둔 어느 겨울, 같은 반 친구인 수정과 주희는 함께 땡땡이를 친다. 오랫동안 수정을 좋아해 온 주희는, 그곳에서 피하고 싶은 과거의 한순간과 마주한다.
연출의도 잘 풀리지 않는 짝사랑에 위로를 보낸다. 쓸쓸하고 외로운 사랑의 순간들도 모두 알아봐주고 싶었다.
프로그램노트 주인공 주희(서하림)는 수정(이하람)을 항상 걱정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사랑의 감정에서 발현되는 모습일 것이다. 누구나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면 주희가 수정을 대하듯 사려 깊은 마음으로 상대방을 바라볼 것이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황일 땐 고개를 돌릴 것이다. 김가현 감독은 자신만의 감성으로 짝사랑하는 주희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제는 단어만 들어도 향수를 일으키는 편지라는 소재를 활용하여 그것만이 가지고 있는 감성을 영화에 잘 녹여낸다. 과거와 현재의 수정이 중첩되는 장면에서는 편지 내용이 프레임 안에 자막으로 쓰이는데 이는 영화가 담고 있는 분위기와 정서에 적절하게 배합되어 잔잔했던 감정을 요동치게 만든다. 또한 영화음악은 전체적인 영화 톤에 마무리 붓질을 하듯 감정의 깊이를 만들어낸다. 고등학생에서 이제는 곧 성인이 되는 그들의 겨울은 제목처럼 어리고 차갑지만 그 계절이 지나면 분명 봄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그들의 감정과 관계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감정들을 돌이켜 생각해볼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김민근)
흐린 영화 Gloomy
시놉시스 독립영화 촬영장에서 연출부 막내인 ‘서정’은 조연 배우 ‘영화’를 탐탁잖아한다.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서정'은 촬영이 끝난 후, 사무실에 치킨 배달을 온 '영화'를 발견하고, 둘은 촬영장 밖 각자의 이면을 발견하며 가까워진다. '영화'의 촬영 마지막 날, '서정'은 조감독으로부터 '영화'의 촬영 분량이 삭제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지만, 사실을 전달하기를 망설인다. 끝내 '서정'은 '영화'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영화'는 아쉽게 촬영을 끝마치게 된다. 다음날, '서정'은 '영화'에게 연기를 계속하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 촬영장에서 벗어나 '영화'를 향해 달린다.
연출의도 우리는 살면서 많은 관계들을 이뤄나간다. 관계의 깊이와 시간은 상대적이지 않다. 오래 알고 지내도 서로를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듯, 진정한 관계는 상대에게 관심을 두는 순간부터 애정과 함께 형성된다. 일로만 만났던 두 사람이 각자의 이면을 발견하며 관계를 새로이 맺어가는 과정에 대해 그리고자 한다. 그리고 고민하는 청춘들에게, 당신은 잘 견뎌내고 있으니 계속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프로그램노트 단편 영화 연출부 막내 서정(김보아)은 스케줄 조정부터 잡일까지 도맡는다. 현장에는 영화 속 조연 영화(김보라미)가 그녀 곁을 맴돌고 서정은 이런 영화가 다소 못마땅하다. 하지만 각자의 사연이 이어지고 둘은 이내 가까워진다. 마지막 촬영, 영화의 촬영 컷이 삭제되고 서정은 그녀에게 이 사실을 말할지 말지 갈등한다. '흐린 영화'는 메타 영화(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다. 다만 이 테두리보다 중요해 보이는 것은 인물이 겪는 피로감이다. 영화는 예술이기 이전 노동이 수반된 결과이며, 그 과정 속에서 ‘영화 노동자’의 감정을 섬세하게 파고든다. 서열 하단에 놓인 두 여성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쉽고 간편하게 연대나 지지를 말하지 않는다. 영화(인)의 자질을 획득하기 위한 두 사람의 고군분투는 복잡 미묘한 현장의 위계질서와 완력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그저 각각의 시선이 교환될 뿐이다. 그 단아하고 정직한 시선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이동윤)
찐 감자 POTATO
시놉시스 언제부터인지 아빠가 감자로 변한다. 딸 윤희는 처음으로 감자를 데리고 짧은 나들이를 떠난다.
연출의도 밉지만 마음이 쓰이는, 불편하지만 때론 기대게 되는
프로그램노트 주인공 윤희’(신민경)의 아빠(이기준)는 영화번역가이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그는 한 번씩 감자로 변하는데 윤희는 그런 아빠의 모습이 탐탁지 않다. 아빠가 번역한 영화 티켓을 그가 아닌 삼촌(이시형)한테 건네받게 된 윤희는 감자로 변한 아빠와 함께 짧은 외출을 한다. 아빠의 일상을 삼촌이 전달할 정도로 영화 속 부녀의 관계는 굉장히 어색하고 냉랭해 보일 수도 있다. 영화를 보면 그러한 부녀의 관계가 정확히 나오진 않지만 윤희가 감자를 대하는 태도와 아빠의 작은 행동에서 말은 하지 않아도 둘의 애틋함을 느낄 수 있다. 아빠가 감자로 변한다는 판타지적인 아이디어는 일상의 특별함을 더하고 있고 그에 맞는 컷 구성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또한 그로 인해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들은 관객에게 미소를 머금게 한다. 잔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잘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한 감독의 고민이 절실히 느껴진다. (김민근)
시나리오를 쓰다가, 두 사람이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교환하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주희 경우에는 수정이를 계속 그리는 거예요. 마음으로 그리는 게 바깥으로도 표현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희는 수정이를 생각하고 많이 관찰한다는 의미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설정을 넣게 되었고 수정이는 이야기를 전개 시키면서 학교 안에서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라고 생각을 하다가 딱 그 순간에 찍을 수 있는 폴라로이드 사진이 좋을 것 같다 생각을 하다 보니까 이제 수정이의 캐릭터에게도 그게 맞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따로 공고를 올려서 배우를 뽑지 않았고 직접 컨택을 했었는데 저희 과랑 같은 층을 쓰는 연극과가 있어요. 원래 김보아, 김보라미 두 분이 되게 밝은 분들이거든요. 웃을 때가 제일 예쁘고요. 사실 다른 작품에서는 항상 웃음이 많은 누군가의 여자친구, 밝은 친구 역할의 조연으로 나왔었는데 이 사람한테 뭔가 서사를 하나 부여하고 싶다. 이 사람이 꾀죄죄했으면 좋겠다. 이 사람을 올려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이미지만 보고 결정했어요. 어차피 저도 연출이 처음이니까 그분들이 처음 주연을 맡더라도 계속 나랑 얘기하면 되겠지. 그런 생각으로 진짜 자주 만났던 것 같아요.
영화 속 영화로 여러 작품들을 추천을 해주셨어요. 제가 그 중에서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일단 내용 자체가 <찐 감자>와 연결되는 건 아니에요. 빈민층의 슬픈 삶을 그린 이야기인데요. 사실 주인공 윤희 또래가 좋아하기는 쉽지 않은 영화라고 생각을 했어요. 굉장히 오래된 영화고요. 아빠랑 윤희가 뭔가 서로 틱틱대고 안 친하고 딸이 아빠를 안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좀 마이너한 취향만은 서로 연결이 된다는 생각으로 이 작품을 고른 것입니다.